[김면수의 이슈만화경] 제 기능 못하는 사업용 차량 블랙박스

입력 2017-07-1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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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사회부 차장

항공기 또는 자동차 등에 장착된 블랙박스(Black Box)는 사고의 경위를 밝히는 데 아주 중요한 기계이다. 실제로 사고 후 블랙박스를 회수해 분석해 보면 해당 항공기 또는 자동차 등의 사고 경위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

그런데 사고의 순간을 기록해야 할 블랙박스가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영영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블랙박스 오작동 사례는 적지 않다. 일례를 들어보자.

2월 중순께 충북 단양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던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 관광버스가 가드레일을 뚫고 추락했다. 이 사고로 운전자 A(62) 씨가 숨졌고, 대학생 2명이 중상을, 나머지 42명이 경상이나 찰과상을 입었다.

경찰은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수사에 착수했지만, 사고 버스의 블랙박스뿐만 아니라 사고 버스를 뒤따르던 관광버스의 블랙박스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설치는 했지만,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탓에 이들 버스 2대의 블랙박스는 사고 원인을 밝혀내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지난달 15일 청주의 한 어린이 보호구역 도로변을 걷던 초등학생이 시내버스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경찰은 사고가 났는데도 차를 세워 현장 구호 조치를 하지 않은 채 20분가량 운행을 계속한 버스 운전기사 B(60) 씨를 검거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차량 혐의로 입건했다.

B 씨는 사고가 난 줄 몰랐다며 도주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반면, 피해자 유가족들은 명백한 ‘뺑소니’라며 엄벌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사고 정황을 밝혀 줄 유일한 단서는 바로 블랙박스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고 당시 버스의 블랙박스 저장장치는 오류가 난 상태였다.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 사고 원인을 규명할 수 있었던 블랙박스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경우들이다. 반면 블랙박스가 사고 당시 정황을 고스란히 담아 낸 경우도 있다.

이달 9일 오후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양재나들목 부근에서 광역버스와 승용차가 빗길에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2명이 숨졌고, 16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했다.

사고를 낸 광역버스 내부를 찍은 블랙박스에는 사고 충격이 오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이 졸음운전을 하는 운전기사의 모습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사고 버스보다 앞서가던 차량이 찍은 후방 블랙박스 영상은 참혹한 사고 순간과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채 앞서가던 승용차를 덮치는 사고 당시 정황을 생생히 담아 내고 있다.

차량 내 블랙박스 설치는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상당수 사업용 버스의 블랙박스는 무늬만 블랙박스이지,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고는 예측 불가능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닥칠 수 있다. 무엇보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고 후 원인을 규명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이 이용하는 시내버스 등 사업용 차량에 대해서는 블랙박스 설치를 법으로 정해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블랙박스 오작동으로 인해 최소한 진실이 묻히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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