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부가 유럽연합(EU) 밖에 있는 기업이 자국 기업을 인수할 때 이를 막는 권한을 확대하기로 했다. 작년에 중국 가전업체 메이디가 독일의 최대 산업용 로봇업체 쿠카를 인수하면서 기술 유출 등의 우려를 키웠기 때문이라고 12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중국 가전업체 메이디는 지난해 독일의 최대 산업용 로봇업체 쿠카를 45억 유로(약 5조8615억 원)에 인수했다. 당시 독일의 첨단 산업이 중국 자본에 위협을 받는다는 우려가 나왔다. 또 작년 말 중국의 푸젠그랜드칩투자펀드가 독일의 보안 장비업체인 아익스트론을 인수하려던 것을 두고 국가 안보가 침해당한다는 논란이 있었다. 당시 독일 정부가 인수 허가를 내주지않아 인수는 불발됐다.
중국 자본에 독일 기업들이 인수되는 사례가 잇따르자 독일 정부는 자국 기업을 보호하는 자구책을 내놨다. EU 밖에 있는 기업이 자국 기업을 인수할 때 검토를 강화하는 법을 적용키로 한 것이다.
현행 독일 법에 따르면 EU 외의 국가가 독일 기업의 25%를 인수할 때 공공질서 또는 국가 안보를 저해한다고 판단되면 정부가 나서서 이를 막을 수 있다. 다만 주로 방위산업체나 보안 관련 정보·기술(IT) 기업에 국한됐다. 그런데 이날 독일 정부가 채택한 지침은 법률의 범위를 확대해 핵심인프라에 해당하는 모든 기업에 관한 인수합병을 검토할 수 있게 했다. 바뀐 지침에 따르면 발전소, 에너지, 전자 결제, 병원, 운송 업체, 소프트웨어 및 첨단 장비 업체들이 포함된다. 인수 승인을 위한 검사 기간도 현행 2개월에서 4개월로 2배 늘려 적용키로 했다. EU 국가 중 자국 기업이 외국 기업에 인수되는 것을 경계해 보호산업 분야를 명시한 것은 독일이 처음이다.
독일의 브리기테 지프리스 경제 장관은 “최근 인수 합병의 규모와 복잡성이 명백히 증가했다”며 “이를 해결하려면 법률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경제 체제를 채택한 국가 중 하나이지만 동시에 공정한 경쟁을 원하는 것”이라며 이번 조처가 보호무역에 가까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일축했다. 지프리스 장관은 “독일 기업들은 종종 독일보다 덜 개방된 경제 체제를 채택한 국가의 기업들과 경쟁해야 한다”며 “새로 개정된 법은 이를 고려해 더 많은 호혜성을 보장한다”고 말했다.
올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는 EU 집행위원회에 EU 외 국가의 기업이 EU의 IT 기업을 인수하려 할 때 이를 검토할 수 있는 권한을 더 폭넓게 부여하고 필요에 따라 개입해 달라고 촉구했다. 지프리스 장관의 대변인은 “기업의 등 뒤에서 시장에 개입하는 규제 당국이 있는지를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며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인수를 하려는 외국 기업이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