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이게 전문가들이냐?

입력 2017-07-18 10:49 수정 2017-07-1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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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당 시인 두보(杜甫)의 ‘빈교행(貧交行)’은 관중과 포숙의 가난했던 시절 우정을 소재로 염량세태(炎凉世態)를 비판한 작품이다. “손바닥을 뒤집으면 구름이요 엎으면 비가 되니 어지럽고 경박한 자들 어찌 다 셀 수 있으랴?”[飜手作雲覆手雨 紛紛輕薄何須數] 이렇게 시작된 시는 관포지교(管鮑之交)와 같은 우정의 도리를 요즘 사람들은 흙처럼 내버린다고 개탄하고 있다.

번운복우(飜雲覆雨)의 인정(人情) 변화는 개인 간의 사귐이나 거래는 물론 국가나 사회의 정책과 공적 조치를 결정하고 추진할 때 영향이 크다. 자칫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국가·사회의 운영체계에 혼란을 빚을 수 있으니 경계하고 삼갈 일이다.

최근 우정사업본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 계획을 취소함으로써 바로 그렇게 뒤집었던 손바닥을 다시 엎었다. 잘 알려진 대로 우정사업본부는 올해 9월에 우표를 발행키로 지난해 6월 결정했다가 1년이 지난 올해 6월 재검토를 결정한 뒤 7월 12일 재심 끝에 발행을 취소했다.

지난해 9대 0으로 발행을 찬성한 심의위원들은 바뀐 사람 없이 그대로인데도 이번엔 3대 8로 반대했다. 정권이 바뀌어 분위기가 달라지자 손을 뒤집은 것인데, 그 과정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재검토를 요구했을 때 우정사업본부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결정한 사항인 만큼 재검토할 이유가 없다”고 했는데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우표 발행은 논란과 대립이 심했다. 반대론자들은 과오가 많은 정치지도자, 친일 행위자를 우상화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국가를 위해 업적을 남긴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우표 발행을 우상화로 매도하는 것은 단견(短見)이며 우표 발행을 취소한 것은 옹졸한 짓이다. 이제는 우리도 그런 정도의 우표는 발행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번 정한 것을 뒤집은 것은 더 문제다. 지난해 촛불시위 때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다. 비정상적인 국가 운영과 합리적이지 못한 정책 결정, 입맛에 따라 바뀌는 행정행위에 대한 반발과 항의였다. 우표 문제를 보면서 바로 그렇게 “이게 나라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라를 나라답지 않게 만드는 것은 대통령과 장관들만이 아니다. 전문적 지식과 식견으로 각종 정책 결정과 자문에 응하는 이른바 전문가들의 잘못과 부실을 따져봐야 한다. 전문가란 해당 분야에서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전문성을 뒷받침하는 정직성 일관성 공정성이다. 정직하지 못하거나 일관성이 없는 전문가는 오히려 사회에 해악(害惡)을 끼친다. 그런 전문가들의 지식은 악의 지식이며 그런 이들의 공정하지 못한 의사 결정은 국가가 아니라 정권에 대한 충성일 뿐이다.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잠정 중단키로 결정한 한수원 이사들의 경우도 ‘번운복우’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노조를 피해 호텔에서 기습적으로 이사회를 개최한 것도 꼴사납지만, 원전만이 살길이라며 ‘원전한류’의 해외 진출에 그렇게 공을 들이던 사람들의 태도 변화는 우표 문제 때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국민의 우려와 혼란을 하루빨리 해소하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지만 그 해명은 군색하고 초라하다.

걱정스러운 것은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소위 전문가라는 이들도 영혼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소신을 관철하기 어려우면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기보다 사퇴하는 것이 맞다. ‘명분 있는 사퇴’가 많은 것이 좋은 사회다. 전문가라면 출처(出處)가 분명해야 하며 행동거지에 구차스러운 게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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