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중형세단과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고교동창에게 이끌려간 곳은 다단계 회사. 스마트폰과 관련한 IT업체라는 말만 믿고 간 이 씨는 망설였지만, 결국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이 씨는 예전처럼 불법 다단계식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고 다단계판매원에 등록했다. 다단계 회사이긴 하나 열심히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득했다. 특히 다단계에서 만난 실장이라는 사람이 통장을 보여주며 연봉 5000만원 이상도 가져갈 수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의 후원수당은 연봉 5000만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씨가 발품을 팔아 지난해 수중에 쥔 돈은 한 달 평균 5만원 남짓. 1년 연봉으로 따지면 60만원 꼴이었다. 이 씨는 “요즘 같은 취업난 속에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처음 다단계판매원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평균 연봉을 계산하면 80만원이었으나 갈수록 수당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카드빚만 늘었다”고 하소연했다.
경기 난국 속에 갈수록 다단계판매원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90% 이상의 다단계판매원들이 벌어들이는 수당은 해마다 하락하는 등 연봉 40만원대로 추락했다.
19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공개한 ‘2016년 다단계판매업체 주요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다단계판매 업체에 등록한 전체 판매원 수는 전년대비 4.1% 증가한 829만명이다.
이 중 후원수당을 지급받은 판매원 수는 164만명에 불과했다. 이들이 가져가는 후원수당 총액은 전년보다 1.5% 증가한 1조7031억원 규모다.
그러나 상위 다단계판매원에게만 후원수당이 집중되는 등 양극화가 뚜렷했다.
지난해 다단계판매원 1만6337명이 받아간 후원수당은 평균 5707만원에 달했다. 이들은 상위 1% 미만에 속하는 다단계판매원들이다.
나머지 99% 판매원(162만 여명)들은 평균 47만원을 받아갔다. 이는 전년 평균 53만원보다 6만원 줄어든 수준이다. 즉, 지난해 상위 1%를 제외한 다단계판매원들의 평균 연봉이 40만원대인 셈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다단계판매업체수는 꾸준히 늘어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다단계판매업체 수의 증감률을 보면, 지난 2011년 70개에 불과했던 다단계업체는 2012년 94개, 2013년 106개, 2014년 109개, 2015년 128개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는 124개로 전년보다 4곳이 줄었지만 폐업·등록말소를 거치는 과정에 21개 사업자가 신규 진입했다.
지난해 다단계판매 시장 매출액 규모는 전년 대비 0.4% 감소한 5조1306억원이었다. 이 중 한국암웨이, 애터미, 뉴스킨코리아, 유니시티코리아, 한국허벌라이프, 봄코리아, 시크릿다이렉트코리아, 에이씨앤코리아, 에이풀, 아프로존 등 상위 10개 업체가 3조6245억원을 거둬가는 구조였다.
다단계판매업체의 주요 취급품목은 건강식품, 화장품, 통신상품, 생활용품, 의료기기 등이다.
한경종 공정위 특수거래과장은 “다단계판매업체에 등록된 판매원 수를 합한 숫자로 다른 업체에도 중복가입하거나 판매원 등록만 하고 판매활동은 하지 않는 경우 등도 많다. 실질적인 판매원 수는 이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며 “매출액이나 후원수당 지급 규모를 단순히 비교하기 보다는 공정위 홈페이지에 공개된 개별업체의 상세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