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語 달쏭思] 납량(納凉) 특집

입력 2017-07-1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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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여름이면 방송사마다 ‘납량특집’이라는 이름 아래 무서운 공포영화나 드라마를 방영하는 경우가 많다. 드라큘라나 귀신 이야기를 다룬 영화, 드라마가 납량특집의 단골 메뉴이다.

‘납량’은 한자로 ‘納凉’이라고 쓰며 각 글자는 ‘들일 납’, ‘서늘할 량’으로 훈독한다. ‘들일 납’은 뭔가를 안으로 들여 놓는다는 의미를 가진 글자인데, 수확한다는 뜻으로도 확장되었다. 따라서 납량(納凉)은 ‘서늘함을 들여 놓다’, ‘서늘함을 수확하다’라는 의미이다. 무서운 영화를 보면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에 간담(肝膽)이 서늘해지는 시원함을 수확하기 때문에 더운 여름철에 의도적으로 특별히 방영하는 공포영화나 드라마를 ‘납량특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물론, 시원한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에서 여는 노래자랑 프로그램이나 수영복 미녀 선발대회 등에도 납량특집이라는 표제를 붙일 수 있다.

중국에서는 납량 대신 ‘소서(消暑)’라는 말을 사용한다. 납량이라는 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꺼질 소, 삭일 소’와 ‘더위 서’로 훈독하는 글자로 이루어진 ‘消暑’, 즉 ‘더위를 삭인다’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납량이든 소서든 더위를 떨쳐내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단어인데 필자 생각에는 ‘납량’이 훨씬 자연친화적인 말 같다. 소서가 인위적으로 더위를 녹이려고 애쓰는 상태를 표현한 말이라면 납량은 어디로부턴가 서늘한 기운이 자연스럽게 내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더위는 녹이려 애쓴다고 해서 녹여지는 게 아니다. 내 마음을 다스려 어디로부터인가 저절로 시원한 기운이 들어오게 해야 한다. 공포영화보다 더 진하게 시원한 기운을 내 몸 안에 들여 놓는 길은 없을까? 땡볕 아래 폐휴지를 줍고 있는 허기진 할머니께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을 사 드린다면 그 할머니보다도 내가 더 시원해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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