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핵화와 상호주의

입력 2008-01-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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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북한의 핵폐기 신고를 둘러싸고 북미 간 갈등이 확대되고 있다. 북한 외무성은 최근 “핵(폐기)신고를 2007년 11월에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은 “신고를 받은 바 없다”고 대응했다. 북한 핵 폐기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상황이 약간 미묘하다. 이런 가운데 존 볼턴 前유엔주재 미국대사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발언은 북한 지도층의 심중을 천기누설한 것일 수 있다.

북한 핵폐기 협상은 그 성공여부가 전적으로 북한의 핵폐기 의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상당수 국내외 전문가들이 전망하듯이 북한은 완벽한 핵 폐기를 추진할 의지가 박약한 듯 하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을 완전 폐기하면 북한 경제를 재건하는 경제협력을 제공하고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완전한 핵 폐기를 하지 않을 개연성이 더 크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렇다면 북한에게 핵은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질까. 북한 위정자들은 핵이 북한 체제 유지에 절대불가결한 최후의 수단임을 굳게 믿고 있는 듯 하다. 북한은 지난 70년대 초반 이후 남북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갈수록 남북 간 국력 차는 벌어졌고 80년대 이후는 그 격차가 회복 불능의 상태로 커졌다. 체제 경쟁에서 절망감을 느낀 북한 당국은 대안을 마련해야 했다. 그 대안이 핵무기 개발과 재래식 군사력 증강이었다. 체제나 경제력으로는 남한과 경쟁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북한은 그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군사력 부문의 우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데 힘을 쏟았다. 특히 핵무기 보유는 체제 유지의 마지막이자 유일한 수단이라 간주했다.

국제사회에서 핵무기 보유는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다. 핵무기가 갖는 궤멸적인 파괴력 때문이다. 그 파괴력 때문에 핵무기의 보유와 그 군사적 사용은 엄격히 구분된다. 보유한다더라도 군사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완전 별개 문제라는 인식이 국제사회의 공통된 시각이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어느 국가가 핵무기 보유했을 때 군사적 영향력보다 정치적 영향력을 더 크게 평가한다. 그래서 핵무기를 보유하면 그 나라는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핵무기를 사용한다고 으름장 놓으면 그 씨알이 먹혀들어간다는 의미다. 북한은 바로 이 점을 노리고 핵무기 개발에 정권의 운명을 걸었다. 체제 유지가 최악의 상황으로 갔을 경우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엄포를 국제사회에 내놓으면 반대급부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시책이 국제사회에서 상당 수준 성공하는 듯 하다.

재래식 무기체제만을 보유한 우리나라는 북한의 비핵화가 절실하다. 미국과 중국 등 기존 핵보유국도 북한의 핵보유가 자국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므로 북한 핵포기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앞으로 협상이 계속 진행되고 언젠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폐기되기는 할 터이다. 그러나 북한은 플루토늄을 원료로 한 완성된 핵탄두 1-2기는 어딘가 숨겨 놓을 것으로 보인다. 핵탄두가 결정적인 위기에 북한을 구해줄 것이라 그들은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핵폐기라는 공식 발표와는 달리 끝까지 감춰둔 핵탄두를 폐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주변 4강도 문제지만 우리나라 대북정책의 일관성 유지다. 새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를 대북한 협력의 전제조건으로 천명하고 있다. 핵을 완전 폐기해야만 북한에 경협을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즉 새 정부는 북한에 대해 핵문제와 연계한 상호주의를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햇볕정책이라는 대북정책 기조아래 일방적 지원을 해왔다.

북한이 핵을 완전 폐기하지 않고 핵탄두를 은폐할 경우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게 당면과제다. 물론 이 때 북한은 공식적으로 핵을 완전 폐기했다고 국제사회에 신고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해 핵폐기에 대한 강력한 정책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휴전 이후 북한과의 대치국면을 살펴보면 우리가 약하게 나가면 북한은 세게 나오고, 우리가 강하면 그들은 약한 태도를 보였다. 북한이 성의를 보일 때까지 엄격한 상호주의를 적용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북한이 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에 현실적이고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일 때 진정한 남북협력 시대가 가능함을 우리 정부가 정책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북한은 남한의 협력 없이는 경제 재건도 체제 유지도 사실상 힘들다.

북한이 핵을 완전 폐기하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북한 핵심층이 미국을 비롯한 외부를 믿지 못하는데 있다. 그들은 핵을 폐기하면 혹시나 외부에서 그들의 체제를 전복시키려할 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맘 속 깊이 담고 있다. 그런 의구심을 불식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북한이 국제사회에 약속한대로 완전한 핵폐기를 선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이 성의를 보이는데 다른 나라가 북한의 체제 유지에 대해 공작 수준의 방해를 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성의를 보인 북한에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전망이다. 그것은 북한 체제가 좋아서라기보다 북한 인민을 살리기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핵신고 사태가 북한에게 국면전환이 될지 아니면 오히려 핵문제를 장기 공전시킬지는 전적으로 북한의 움직임에 달려 있다. 북한이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6자회담 당사자들이 북한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협상 대상 국가로 간주하지 않을지 모른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대해 성실한 핵신고에 상응해 협력하는 상호주의를 지금부터라도 적용해야 한다.

햇볕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북한에 제공한 유•무상, 공식•비공식 지원이 그 동안 수없이 이루어졌다. 북한도 남한의 이 같은 지원에 길들여져 이제는 남한을 그들의 보급기지로 간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로가 이런 왜곡된 시각 아래 협력한다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새 정부는 차제에 대북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그 방향은 상호주의에 입각한 협력체제 구축이며, 그 평가의 주요 잣대는 성실한 핵신고다.

이타임즈 최재완 편집인 [choijw47@e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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