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조명현 지배구조원장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는 선택 아닌 필수”

입력 2017-07-21 11:05 수정 2017-07-2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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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기금본부 공사화, 복지부는 수익 관리 바람직”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이 14일 여의도 한국거래소 내 기업지배구조원 사무실에서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 원장은 “스튜어드십 코드가 국내에 안착하려면 국민연금의 참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동근 기자 foto@)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이 14일 여의도 한국거래소 내 기업지배구조원 사무실에서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 원장은 “스튜어드십 코드가 국내에 안착하려면 국민연금의 참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동근 기자 foto@)

지난해 12월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가 제정된 지 7개월이 지났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말 그대로 저택(邸宅)을 관리하거나 집안일을 담당하는 집사(스튜어드)처럼 기관 투자자들이 고객의 재산을 선량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초기에는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지만, 연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강조한 문재인 신정부의 기조와 맞물리며 자본 시장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하지만 일본처럼 한국에도 스튜어드십 코드가 안착할 수 있을지, 세간의 의구심이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의 조명현(53) 원장을 만나 지난 1년 동안의 소회와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물었다.

조 원장은 지난해 8월 스튜어드십 코드 2차 제정위원회에서 중점적인 역할을 맡아 코드 도입의 기반을 마련했다. 최근에는 코드 이행·점검 관련 이해상충 논란에 휩싸이며 속앓이도 했다.

조 원장을 만난 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된 국제기업지배구조네트워크(ICGN) 행사 참석을 마치고 귀국한 14일 오후였다. ‘연기금·기관의 투자 축제’라 불리는 이번 ICGN 행사에는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등 해외 투자은행(IB)을 비롯해 ISS, 글래스루이스 등 유수 의결권 자문사들이 참석했다. 특히 삼성물산 등 일부 한국 기업 관계자들도 얼굴을 비쳤다는 후문이다.

이 행사에서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변화에 대해 발표한 조 원장은 “한국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고 최근 많은 변화가 일어나면서 말할 것들이 많았다”면서 “발표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도 많은 외국인들이 스튜어드십 코드가 한국에 안착할 수 있을까 의구심과 동시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귀띔했다. 이어 그는 “한국에도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는데 왜 활용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수차례 나왔다”면서 “문제는 밸류크리에이션(기업가치 증대)과 연결되느냐 여부인데, (우리 기업들은) 기업지배구조 얘기만 나오면 ‘재벌 탄압’으로만 생각해 답답한 마음도 든다”고 언급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위원회가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 최종안인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을 발표한 것은 작년 12월 19일.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1호 자산운용사가 나오는 등 긍정적인 변화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기업지배구조 문제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뿌리 깊은 불신(不信)이다. 2015년 삼성과 엘리엇매니지먼트의 표 대결, 2006년 칼아이칸의 KT&G 주식공개매수건, 2003년 SK와 소버린 간 분쟁 등을 지켜본 국내 기업들에 기업지배구조 문제는 ‘귀찮고 불편한 것’으로만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 원장은 이 같은 불신은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SK-소버린 사태만 봐도, 당시 SK 주가는 2만 원대에 불과했는데, 이후 6만~7만 원까지 올라갔다”면서 “공격을 당하는 대부분의 회사들은 주식 가치가 저평가돼 있기 때문에 공격을 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장사들이 다소 정신적인 고통을 좀 받을 수 있지만, SK-소버린 사태가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갖추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진 것처럼 ‘기업지배구조 이슈 = 나쁘다’는 인식은 곤란하다는 설명이다. 이어 그는 “한국 상장사들은 스튜어드십 코드는 무조건 기업들에 불리한 것이라며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지만, 삼성-엘리엇 사태만 봐도 스튜어드십 코드가 있었다면 얘기는 달랐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이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기관 투자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보다 유리한 방어 전략을 찾는 것. 기업과 투자자를 잇는 소통 창구가 바로 스튜어드십 코드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점이자 취지라는 설명이다.

상장사들과의 정신적인 간극(間隙)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의 수동적인 태도도 안착의 걸림돌이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국내에 안착하기 위해선 국민연금의 참여가 필수적이란 것. 당초 국내 자본 시장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이끌 것으로 기대됐던 국민연금은 네 차례나 연구 용역이 유찰되는 등 더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5개월짜리 연구 용역인 만큼 현재로선 국민연금의 연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물 건너갔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를 둘러싼 배경에 대해 갖가지 추측이 나오지만, 이 시점에서 가장 유력해 보이는 건 리더의 부재이다. 조 원장은 “(국민연금의 행보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드러내지 못하는 것도 있을 것”이라며 “이사장이 공석인 게 영향이 크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책임지고 결정할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공무원 조직에서 일이 제대로 진행되기 힘들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또 새 정권이 들어선 가운데 섣불리 움직일 요인이 없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현재 보건복지부 산하의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기금운용본부를 공사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네덜란드 연기금처럼 기금운용본부만 따로 공사처럼 만들어 금융위원회 산하로 들여보내고, 보건복지부는 운용수익만 관리·사용하는 게 효율성 측면에서 낫지 않겠냐는 얘기이다.

그는 “이번에 만난 일본 연기금 대표가 말하기를 일본 공무원 연금을 관리하는 정부연금투자기금(GPIF)은 안정성이 높은 채권본부만 자체 인력이 운영한다고 하더라”면서 “공무원이 잘할 수 없는 영역인 주식운용은 100% 외주를 준다고 했다”고 전했다. 인센티브가 많은 사기업들의 자금운용 능력이 더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날 현재 공개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의결 내용을 보면 2013년도 기준 위탁운용 목표 비율은 기금 전체의 35.4%이다. 국내 주식형이 55%, 국내 채권형이 10%, 해외 주식형이 85%, 해외 채권형이 60%, 대체투자가 80%를 차지한다. 국민연금은 최소 5년이 지난 후 구체적인 기금운용 목표치와 관련 세부 사안들을 공개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 필요성에 대해선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조 원장은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하면 위탁운용 용역을 받는 자산운용사들도 자연스레 인게이지먼트(경영 관여)에 적극 나서게 될 것”이라며, 기관 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자본 시장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언급했다. 실제 이미 해외 학계에서는 ‘기관 투자자의 오너십과 혁신’, ‘헤지펀드 행동주의의 장기적 영향’, ‘기업지배구조’ 등의 제목으로 관련 연구와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다만, 국내에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제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관련 연구가 거의 진행되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조 원장은 “국내 120개 운용사 대부분이 국민연금의 돈을 조금이라도 위탁받고 있기 때문에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나중에 수익률이 떨어지거나 하는 문제가 생겼을 때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된 운용사에 맡겼느냐 여부는 절차적인 적법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 원장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을 둘러싼 이해 상충 논란에 대해 “우선 공적인 역할을 목표로 하는 데다, 자문 서비스로 얻는 수입이 매우 적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동향을 모니터링할 뿐, 개별 기관을 관리·감독할 권한도 없고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반박이다. (이동근 기자 foto@)
▲조 원장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을 둘러싼 이해 상충 논란에 대해 “우선 공적인 역할을 목표로 하는 데다, 자문 서비스로 얻는 수입이 매우 적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동향을 모니터링할 뿐, 개별 기관을 관리·감독할 권한도 없고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반박이다. (이동근 기자 foto@)

현재 8억 원 수준에 불과한 국내 의결권 자문 시장이 커지기 위해서는 양질의 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이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전체 시장 파이만 커질 수 있다면 ISS, 글래스루이스 등 해외 유수 의결권 자문사들의 시장 참여도 적극 환영한다는 것. 대신 의결권 자문 서비스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박리다매(薄利多賣)’ 경쟁 대신 양질의 경쟁 구도가 갖춰질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 기업들 역시 유료 콘텐츠 사용과 관련해 바른 인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얘기이다.

최근 KCGS를 둘러싼 이해 상충 논란에 대해서도 “오해”라고 선을 그었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에게 의결권 자문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는 KCGS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정하고 기관들의 코드 이행까지 점검해 역할이 상충된다는 지적이었다. 이와 관련, 조 원장은 “KCGS는 우선 공적인 역할을 목표로 하는 데다, 자문 서비스로 얻는 수입이 매우 적은 수준”이라며 “지배구조원은 시장 동향을 모니터링할 뿐 개별 기관을 관리·감독할 권한도 없고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다른 나라처럼 학계, 재계, 자산운용사,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위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기관투자자 협의회 등에서 담당하고 KCGS는 간사 역할을 맡을 뿐이란 설명이다. 관리·감독 기능은 당연히 금융감독원 등이 담당해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데 과도한 비용이 든다는 시장 일각의 비판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조 원장은 “일본 연기금 관계자가 말하길 스튜어드십 코드 전담 인력은 1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2명은 계약직 직원으로 정규직 직원은 단 1명이란 얘기이다. 이렇게 큰 조직도 이런 마당에 국내 운용사나 자문사들도 조금만 투자하면 될 듯한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전했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은

1964년생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88년 미국 코넬대에서 전문경영학 석사(MBA)를 밟았고, 1994년 박사 과정을 밟았다. 그 사이 1989년 프랑스 그랑제꼴 ESSEC(Ecole Superieure des Sciences Economics et Commerciales)에서도 학위를 수여했다. 박사 과정을 마친 후, 미국 오웬 밴더빌트 대학교 경영대학원 조교수로 부임했다. 이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조교수를 시작으로 현재 정교수로 재직 중이다. 밴더빌트 대학교 초빙교수로도 활동했다. 이 외에도 한국통신 민영화추진위원회, 한국국제경제학회, 산업자원부, 재정경제부, 대통령실 국민경제자문회의, 한국전략경영학회,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장 평가단, 한국경영학회, 한국경영교육학회,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총리실 금융감독혁신TF,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예금보호공사, 한국거래소, 국회 등 다양한 곳에서 자문위원과 평가위원 등으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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