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가 23일 오전 8시4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37명으로 줄었다.
나눔의 집에 따르면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0대에 부모를 여의고 친척 집에서 생활하다가 17살의 나이로 중국 지린성 훈춘 위안소로 강제동원됐다. 이후 탈출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때마다 구타를 당해 왼쪽 고막이 터졌다. 3년간의 위안부 생활 동안 7차례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2007년 2월 마이크 혼다 미국 연방하원이 주체한 미국 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서 “해방 후 38일을 걸어 조국에 돌아왔다”며 “위안소에서 하루 40여 명을 상대했고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고 증언했다.
전쟁 뒤에는 함경북도 성진으로 가 두만강을 넘었다. 죽을 고비 끝에 고향에 돌아와 위안소로 끌려가기 전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와 생활했지만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1998년 나눔의 집으로 오기까지 할머니는 혼자였다.
김 할머니는 그동안 매주 수요 집회에 나가 위안부 실상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배상금 등을 모아 아름다운 재단에 1억 원, 나눔의 집에 1000만 원, 한 천주교 단체에 1억5000만 원 등을 기부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의 빈소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차병원 지하 1층 특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25일이며 장지는 나눔의 집 추모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