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정국이 그야말로 일촉즉발 상태로 악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베네수엘라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면서 시리아와 같은 내전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오는 30일로 예정된 제헌 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마두로 대통령은 “다음 일요일(30일)에 선거를 하지 않는 사람은 베네수엘라 공화국과 평화를 위한 권리를 해치는 것”이라면서 “우리가 결정하는 것은 평화냐 전쟁이냐, 폭력이나 제헌 의회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마두로의 선거 강행의지는 베네수엘라 야권이 정부의 제헌의회 선거를 저지하고자 수도 카라카스에서 48시간 총파업을 촉구하는 등 총공세를 예고한 가운데 나왔다. 같은 날 마두로는 국영 VTV에 개설된 자신의 주간 프로그램에서 “제국주의적인 우파 진영은 베네수엘라에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우리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은 오직 민중에게 있다”면서 선거 강행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의회해산, 개헌, 법 개정 등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 제헌 의회를 구성할 계획이며 오는 30일 제헌 의회 의원 535명을 선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야권을 비롯한 미국과 국제사회는 마두로 대통령의 제헌 의회 선거 등 개헌 강행 방침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야권은 지난 16일 독자적으로 진행한 비공식 국민투표에서 98% 이상이 제헌 의회 구성에 반대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7일 베네수엘라 정부가 개헌 강행 방침을 밝히자 경제 제재를 할 것임을 시사했다.
우파 야권연합 국민연합회의(MUD)의 시몬 칼사디야 부의장은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선거 당일 투표소에 가서 반(反) 투표 시위를 벌이자고 촉구했다. 그는 “만약 마두로 정권이 금요일(28일)까지 이러한 사기극을 취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29~30일에 행동에 나설 것임을 알린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2013년 마두로 대통령 취임 이후 극심한 경기침체와 부채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한때 라틴 아메리카에서 석유 부국으로 꼽혔다. 강력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사회주의 정권이 민심을 통제했지만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던 국제유가가 50달러선으로 추락하면서 베네수엘라 정부의 곳간도 바닥났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은 99억8300만 달러로, 2002년 이후 처음으로 100억 달러 밑으로 줄었다. 급기야 의약품과 생필품 보급마저 어려워지는 등 국민들의 생활이 궁핍해지면서 반정부 시위가 격해졌다. 4개월 가까이 이어진 반정부 시위는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그사이 반정부 시위대가 훔친 베네수엘라 경찰 소속 헬리콥터가 대법원을 수류탄으로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야권 지도자 가운데 하나인 훌리오 보르헤스 국회의장은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주가 베네수엘라 사태에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마두로 정권을 저지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의회전문매체 더 힐(The Hill)은 2011년 시리아 내전 촉발 계기가 된 아랍의 봄이 식량가격의 급등으로 인해 시작됐다면서 치솟는 물가로 궁핍해진 베네수엘라에서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베네수엘라에 내전이 발발한다면 시리아처럼 내전으로 인한 국제적인 난민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며 선진국들이 베네수엘라 문제에 더 관심을 둬야 한다고 더 힐은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