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5년마다 치르는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정치권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뒤를 이을 유력한 후계자 중 하나로 꼽혔던 쑨정차이 전 충칭시 서기의 실각이 공식적으로 확정됐다고 24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쑨정차이가 엄중한 기율 위반 혐의로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엄중한 기율 위반’은 부정부패 혐의로 당·정 고위 관리가 낙마할 때 쓰는 상투적인 표현이다. 이는 해당 인사가 단순히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넘어 사법 처리까지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쑨정차이는 지난 2012년 49세의 젊은 나이에 최고 지도부를 구성하는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바로 아래인 25명의 정치국원에 포함되고 시진핑과 권력투쟁을 벌이다가 낙마한 보시라이의 뒤를 이어 내륙 중심도시인 충칭시 서기에 오르면서 시진핑 후계자 중 한 명으로 주목받게 됐다.
그러나 그는 지난 14일 베이징에서 열린 금융공작회의 도중 전격적으로 기율검사위에 신병이 구속되고 그 다음날 충칭시 서기에서 해임되면서 이날 발표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쑨정차이는 보시라이 시절의 뇌물과 횡령, 직권남용 등의 부패 구조를 차단하지 않고 먼저 구속된 충칭시 전 부시장 겸 공안국장과 함께 부정부패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홍콩 언론 등은 쑨정차이의 부인 후잉이 중국민생은행이 관리하는 이른바 ‘사모님 클럽’의 멤버로 있으면서 사실상 뇌물을 받은 혐의도 있다고 전했다.
쑨정차이에 대한 형사 재판과 징역형으로 이어질 이번 조사는 시진핑 체제 하에서 당의 권력승계 구도가 붕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FT는 풀이했다. 당초 쑨은 올가을 19차 당대회에서 상무위원으로의 승진이 유력시됐다.
영국 런던대학교를 구성하는 17개 단과대학의 하나인 동양아프리카연구대학(SOAS)의 스티브 창 중국정치학 교수는 “이번 발표는 시 주석이 1990년대 이후 내려져 왔던 매우 일반적인 권력승계 패턴을 바꿀 계획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는 시진핑이 국가주석 10년 임기가 끝나는 2022년 이후에도 당서기 직을 유지하면서 권력을 계속 장악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히 쑨정차이는 시진핑의 전임자인 후진타오가 밀어줬던 인사다. 창 교수는 “쑨정차이는 다른 후계자 후보보다 시 주석에 대한 공개적 찬사에 시큰둥했다”며 “이는 시 주석에게 저항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혀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쑨정차이의 해임에서 기율위 조사 착수 공식 발표까지 약 1주일의 시간만 걸린 것에도 주목하고 있다. 한때 시진핑의 최대 경쟁자였던 보시라이의 경우는 1개월 가까이 걸렸다. 게다가 이번에는 당 장로와 현역 지도자들이 모이는 비공개적인 베이다허 회의에서 쑨정차이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예상됐는데 시 주석이 이를 기다리지 않고 전격적으로 처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시진핑이 19차 당대회에서 최고지도부 인사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장쩌민 이후 굳어져 왔던 중국의 정치체계가 뒤집히면서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게 됐다. 중국 당 내부에서는 시 주석이 최측근이자 반부패 캠페인의 선봉장인 왕치산에 대해 비공식적인 은퇴 연령인 68세가 됐지만 계속 중책을 맡길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또 현재 7명인 상무위원 수도 5명으로 줄여 시 주석으로의 권력을 더욱 집중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