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풍경] 이제는 사라진 풍경들

입력 2017-07-2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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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예전 여름보다 요즘 여름이 더 더운 것 같다. 예전에 시골에 살 때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없어도 지금보다 시원했다. 느낌뿐일지 모르지만 마당가 감나무 아래 혹은 동네 한가운데 느티나무 아래 거적을 내어다 깔고 누워 부채를 부치며 새소리와 매미소리를 듣는 것도 참 시원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시원한 게 마당가에 짓는 공중 다락이다.

공중 다락을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마당가 그늘 진 곳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참외밭 과수원과 같은 허공 다락을 만든다. 마당가 나뭇잎이 충분히 해를 가려주지만, 저녁 때 모기가 달려들지 못하도록 방 모양의 모기장을 칠 수 있게 헐렁 지붕도 만든다. 동생과 나는 그곳에서 생활할 때가 많았다. 어머니도 찐 감자나 찐 옥수수 같은 간식거리를 그곳에 가져다주셨다. 그때는 여름이 지금처럼 더운지 몰랐다.

요즘 시장에 아이들 주먹만 한 자두는 나와도 방울토마토만 한 재래종 자두는 보이지 않는다. 재래종 자두는 지방마다 부르는 말이 다르다. ‘에추’라고 부르는 곳도 있고, ‘꽤’라고 부르는 곳도 있고, ‘고야’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이제는 이런 재래종 나무를 심지 않아 정선 오일장 같은 곳에 가야 겨우 구경할 수가 있다.

여름 추억 가운데 봇도랑 속의 쌀미꾸리도 빼놓을 수 없다. 봇도랑은 냇물에 보를 막아 그 봇물이 논으로 흘러 들어가고 또 흘러나올 수 있게 만든 작은 도랑이다. 그러나 이렇게 설명해도 봇도랑에 얽힌 시골 아이들의 추억까지는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어린 시절 여름방학을 하면 동생과 나는 거의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봇도랑을 뒤졌다. 내가 체를 들고 나서면 동생은 얼른 주전자를 들고 따라 나선다. 마을마다 작은 봇도랑에 미꾸라지와 쌀미꾸리가 마를 날이 없었다. 지금은 봇도랑을 뒤질 아이도 없지만, 봇도랑에 노는 고기도 없다. 오래전 농약을 쓰기 시작한 다음 거의 씨가 말랐다. 수백 마리 수천 마리가 밤하늘에 작은 불빛을 이을락 끊을락 날아다니던 반딧불도 비슷한 시기에 자취를 감췄다.?그러다 요즘 동네에 농사를 짓지 않는 묵는 논과 묵는 밭이 많아 아주 이따금 반딧불 구경을 할 수 있다.

여름 날 저녁 풍경도 잊을 수 없다. 시골의 저녁밥은 늘 늦다. 어른들이 논밭에서 늦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저물어 밭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저녁을 지을 동안 우리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저녁 먹을 자리를 마련한다. 멍석 옆에 모깃불도 피운다. 주위는 점점 어두워지고 밤하늘의 별은 그대로 밥상에 쏟아져 내릴 듯 초롱초롱하다.

그 시절엔 은하수의 자잘한 가루까지도 헤아릴 만큼 눈이 좋았다. 저녁을 다 먹으면 형제들이 멍석에 누워 별을 바라보며 학교에서 배운 별자리를 찾아보기도 하고, 움직이는 별처럼 아주 천천히 밤하늘을 가로질러 떠가는 인공위성을 찾아내기도 한다. 잊을 수 없는 것은 그때 우리가 붙인 별자리의 이름들이다. 지금의 골프채 같은 ‘곰배자리’도 있고, ‘새총자리’도 있고, ‘썰매자리’도 있다.

다시 갈 수 없는 날의 추억은 늘 이렇게 내 마음 안에 아름답다. 어디 이것이 나만의 추억일까. 어린 시절 농촌에서 자란 사람들 가슴 속에는 이런 추억 한 자락씩이 있지 않을까. 그리운 형제들과 그리운 친구들, 그리고 정다운 추억들. 이 아름다운 추억들이 영원히 우리 마음 안에 고향처럼 머물길 바란다. 한여름의 더위도 한 자락의 추억으로 시원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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