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67. 한씨 미녀(韓氏 美女)

입력 2017-08-0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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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유역에서 고구려 왕을 만난 백제 여인

한씨 미녀(韓氏 美女)는 경기도에 있는 행주산성을 배경으로 전해지고 있는 설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삼국사기’에는 지리지(地理志)에서 한산주(漢山州)에 있는 왕봉현(王逢縣)을 설명하면서 한씨 미녀가 안장왕(安藏王·재위 519~531)을 맞이한 땅이라고 하였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는 보다 자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지명은 보다 구체적으로 고양 행주이며, 한씨의 이름도 주(珠)로 설명되어 있다. 고양 행주 장자(長者)의 딸인 한씨는 절세미녀였다고 한다.

당시 한강유역에 위치한 행주는 백제의 땅이었다. 고구려 안장왕은 태자 시절에 상인 차림을 하고 이 지역에 왔다가 한씨의 아름다움에 반해 몰래 정을 통했다. 그리고는 귀국하면서 자신은 고구려의 태자로 귀국한 뒤 많은 군사를 데리고 와서 이 지역을 차지하고 한주를 아내로 맞이할 것을 약속하였다. 고구려로 돌아간 뒤 왕이 된 안장왕은 약속대로 여러 차례 군사를 보내어 공격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사이 한씨가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은 태수가 한씨의 부모에게 청혼하였다. 한씨가 정을 준 사람이 있다며 거절하자 화가 난 태수는 고구려의 첩자와 정을 통했다고 하여 한씨를 옥에 가두었다. 그리고는 사형에 처하겠다고 위협하였다. 이 소식은 안장왕의 귀에까지 들어갔지만 구할 길이 없었다.

그때 안장왕의 누이동생인 안학과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안장왕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던 장군 을밀(乙密)이 안학과의 혼인을 조건으로 자신이 나서겠다고 하였다. 안장왕이 승낙하자 을밀은 수군(水軍) 5천을 거느리고 바닷길로 먼저 떠났다. 안장왕은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육로로 가기로 했다.

마침 생일을 맞이한 태수는 관리들과 친구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한씨에게 사람을 보내 자신의 뜻을 따를 것을 요구했다. 한씨가 거절하자 화가 난 태수는 한씨를 끌어내 처형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 순간 춤추는 사람으로 가장한 을밀의 군사들이 들이닥쳤다. 을밀의 고구려 군사들은 성안을 점령하고는 감옥을 부숴 한씨를 구해내었다. 그리고 안장왕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한강 일대의 각 성읍을 쳐서 항복을 받아내었다. 백제는 한강 일대를 빼앗기고는 크게 동요하였다. 덕분에 안장왕은 아무런 장애 없이 백제의 여러 고을을 지나 마침내 한씨와 상봉할 수 있었다.

한씨가 살았던 한강유역은 고대 삼국의 각축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곳이다. 안장왕이 장수로 변장하고 왔던 것이나, 태수가 고구려 첩자와 통했다고 말하는 것 등에서 안장왕이 우연히 놀러 왔다가 한씨를 만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한씨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안장왕을 만나 사랑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적국인 고구려의 침입을 유도한 것이다. 고구려에서 보면 한씨는 한강유역을 차지할 수 있게 한 은인이지만, 백제의 입장에서는 적국의 왕을 사랑해 한강유역을 잃게 만든 매국노인 것이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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