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의 우리술 이야기] 쌀 소비와 우리 술

입력 2017-08-0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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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지방행정연수원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강의를 한 후 몇몇 분과 함께 연수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때 지자체 고위직 한 분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국의 농업, 특히 쌀농사는 해법이 없다. 아마 있다면 식당에서 밥을 각자 2인분 시켜 남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현장에서 느낀 쌀 소비 감소에 대한 고민의 결과일 것이다. 얼마 전 신임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쌀 소비 확대를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대안은 없다. 한편에서는 논 등의 절대농지(絶對農地)를 태양광발전소 부지로 전환하겠다는 말도 있다. 또한 한미 FTA 재협상 과정에서 쌀 수입 확대 압력이 커질 것이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0%대이고, 쌀 재고는 넘치고, 농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다 알려진 사실이다. 엄청난 재정 투입을 하였고 농업 관련 지원 기관도 엄청 많다. 그럼에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 정책 책임자들이 소리 높여 구호를 외쳤지만 구체적인 정책을 추진할 때는 이해 관계, 작은 부작용이 두려워 대충 끝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도 적폐 중의 하나이다. 적폐 청산을 내세우는 새로운 정부가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순한 재정 투입 확대로 해결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쌀 소비를 늘릴 방안이 그렇게 없는 것일까? 주변을 잘 살펴보면 여러 분야에서 많이 있을 것 같다. 필자가 관심이 있는 우리 술 분야가 대표적이다. 쌀 소비 확대 이외에 수입 대체, 고용 창출, 농가 소득 증대 등의 부수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안 가운데 하나는 우리 술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우리 술 산업도 농업 못지않게 문제가 많고 낙후되어 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소주, 막걸리 등의 술은 거의 모두 싸구려다. 비싼 술은 와인, 위스키, 사케 등 모두 수입산이다. 국민이 많이 마시는 소주, 맥주, 막걸리의 원료도 대부분 수입산이다. 물만 국산인 셈이다. 술의 원료는 쌀, 보리, 과일 등의 농산물이다. 일본산 사케를 마시면 일본쌀을 소비하는 것이다. 국산 소주와 맥주, 막걸리를 마시는 것도 외국 농산물을 먹는 것이다.

우리 쌀로 만든 우리 술이 많아지면 당연히 쌀 소비가 늘고 농촌 경제도 좋아진다. 우리 술 산업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도 많다. 여기서는 두 가지만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가양주 문화의 복원이다. 우리 술 문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집에서 빚어 마시는 가양주 문화였다. 일제는 1916년 주세령(酒稅令)을 통해 집에서 술 빚는 것을 점진적으로 금지했다. 1994년에서야 조세범처벌법의 개정으로 자가 소비용으로 집에서 술 빚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자가 소비의 범위를 엄격히 해석해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다. 친구 모임과 결혼식 등에서도 집에서 빚은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하면 가양주 문화가 확산하고 쌀 소비도 늘 것이다. 자신이 마실 술을 수입산으로 빚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농촌에서 한 달에 쌀 1~2가마로 막걸리 등을 빚어 팔 때는 주세법에 의한 주류 제조 허가가 필요 없도록 하는 것이다. 농촌의 막걸리 양조도 김치, 고추장, 된장 등과 비슷하게 인정해주는 것이다. 실제 술 빚는 것이 김치나 장 담그는 것보다 쉽다. 농촌의 소규모 양조장이 커지면 주류 제조 허가를 받아 기업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더 좋다. 지금도 지역 특산주라 하여 농민의 주류 제조에 대한 지원과 혜택이 있으나, 과도한 규제 때문에 돈만 들어가고 실효성은 낮다. 신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이 정도라도 해주면 쌀 소비 확대와 우리 술 산업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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