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독서산책] 길버트 월드바우어 ‘곤충의 통찰력’

입력 2017-08-0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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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퇴치 일등공신은 헨리 포드?

‘일본 뇌염 모기 남해안 상륙!’ 이 표현이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넉넉지 않던 시절에도 여름을 지켜주는 것은 든든한 모기장이었다. 모기나 파리와 같은 해충의 세계를 흥미진지하게 다룬 책이 바로 길버트 월드바우어의 ‘곤충의 통찰력’이다. 일리노이대 곤충학교 명예교수로 평생을 생물학의 대중화에 힘써 온 학자이자 작가가 내놓은 작품이다. 부제는 ‘해충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 해충의 세계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해충은 인간의 활동을 간섭하는 곤충종이다. 전 세계에 30만 종이 넘는 식물과 120만 종이 넘는 동물이 있는데, 이 가운데 곤충은 무려 90만 종이나 된다. 인간이 재배한 곡물을 먹어치우고 질병을 옮기는 등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해충은 2% 미만에 불과하다. 이 책에는 모기, 집파리, 초파리, 옥수수근충, 진딧물 등 모두 20종의 해충이 나온다.

모기는 ‘가장 위험한 곤충’으로 불린다. 다른 어떤 곤충 집단보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따금 국내에도 말라리아 발병 소식이 전해지기도 하는데, 모기는 말라리아의 주범이다. 이 병은 감염성 질환 가운데 가장 파괴적인데, 지금도 아프리카에서는 한 시간에 250여 명이 이로 인해 사망하고 있다. 말라리아 사망자 수는 에이즈의 2배나 된다.

1999년 미국 뉴욕에서 처음 발병한 후 미국 전역으로 삽시간에 퍼져 나간 웨스트나일열의 주범도 모기다. 또 하나 열대지방에서 여전히 발병하고 있는 황열병의 주범이 모기다. 이 병은 19세기에만 하더라도 뉴올리언스부터 필라델피아에 이르는 항구 도시에선 골칫덩어리였으며, 수십 년간 파나마 운하의 건설을 지연시킨 원인이 되기도 했다.

모기는 3000여 종이 있는데 모기 성충 대다수는 피 대신 꿀을 비롯한 식물의 즙만 먹고 산다.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는 일부 암컷이다. 이들은 알을 낳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피를 구하며, 주로 활동하는 시기는 새벽이나 저녁 또는 한밤중이다. 일본 뇌염에 대해 저자는 “이스턴 뇌염 바이러스는 인간에게는 드물지만 지적 장애를 수반한다”고 경고한다.

모기 다음으로 소개된 해충은 파리다. 20세기 초엽 미국에서는 도처에 집파리가 들끓었다. 집파리는 말의 배설물을 좋아하는데, 온갖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전파하는 주범이었다. 특히 장티푸스를 옮기는 데 파리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파리 퇴치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파리채, 파리 잡이용 끈끈이, 배설물 더미를 처리하는 노력 등을 들 수 있지만, 헨리 포드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이동 수단으로 말을 대신해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파리의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살충제의 원자폭탄’이라 불리는 DDT는 짧은 기간 파리 박멸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놀라운 일은 DDT에 내성을 가진 소수의 파리가 살아 남았고, 이들의 유전자가 후대에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DDT의 효과는 크게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1945년 몸무게 1그램당 0.18마이크로그램의 DDT면 충분했지만, 1951년이 되면 700배가량인 125마이크로그램을 투입해야 모기를 박멸할 수 있었다.

곤충의 세계는 자연계의 생존 원리를 보여준다. 자연은 생존하는 데 덜 적합한 개체를 속아내는 한편, 환경의 위협에 잘 대처하고 환경이 제공하는 기회를 이용해 가장 잘 적응한 개체만 살아남도록 한다. 뜨거운 여름, 완전히 다른 세계를 통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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