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부동산 대책, ‘서킷 브레이커’ 이상이 되어야 한다

입력 2017-08-0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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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와대 정책실장

정책을 다루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집값 잡는 일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TV나 자동차 같은 것은 가격이 올라가면 공급이 늘어나고, 그러면서 가격이 다시 떨어진다. 따라서 정부가 어쩌고 할 일이 많지 않다.

하지만 집값은 다르다. 우선 공급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일례로 많은 사람이 강남지역에 살고 싶어 하지만, 이들 모두를 수용할 만큼의 집을 그 지역에 지을 수는 없다. 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지역이 있게 마련이고, 그에 따라 투기 또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한번 값이 오르기 시작하면 값 그 자체가 생명력을 지닌다. 값이 오르면서 잘사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이들이 몰려들면서 더욱 나은 교육환경과 생활환경이 만들어진다. 그만큼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다.

이러다 보니 돈만 마련할 수 있으면 땅이나 집에 덤빈다. 한국갤럽의 2년여 전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1%가 돈을 늘리는 방법으로 부동산을 사겠다고 대답하고 있다. 주식 투자 4%에 비해서는 13배, 은행 적금 27%에 비해서는 거의 배가 된다. 뭐니 뭐니 해도 부동산이라는 이야기다.

집값을 잡기 위해 정부는 이 모든 것을 다 감당해 내야 한다.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정책 과정이라도 단순하면 다행이겠으나 이 또한 그렇지가 않다. 대안 하나를 마련할 때마다 각종 이해관계 집단이나 신념집단과 싸움 아닌 싸움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우리 정부 혼자서 어찌할 수 없는 변수들도 많다. 이를테면 글로벌 유동성 문제나 저금리 기조 같은 것들이다. 참여정부 때에도 정부를 가장 괴롭힌 것은 유동성 문제였다. 세계 경기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넘치는 돈의 상당 부분이 산업이 아닌 부동산으로 몰렸고, 이것이 다시 ‘부동산 불패론’을 강화시켰다.

물론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인도를 비롯한 신흥국가는 물론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도 부동산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큰 도시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서울 강남보다 더 빠른 속도로 뛰었고, 그러다 결국은 금융위기를 만들고 말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저금리 기조를 바탕으로 세계 주요 도시의 집값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미국 도시 지역 집값은 높게는 11% 가까이(시애틀) 올랐고, 영국의 런던 메트로폴리탄 지역도 12%가량 올랐다. 집값 상승이 우리만의 문제도, 또 우리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만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돈이 자연스럽게 부동산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고,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부동산이 좋은 재테크가 될 수 없다는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발표한 8·2 부동산 대책은 미흡하다. 양도세 과세 강화와 대출 규제, 그리고 자금출처 조사 등 대부분이 거래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주가가 급등락할 때 거래를 일시 정지시키는 ‘서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를 쓴 것이다. 몇 달, 아니면 한두 해 시장을 정지시킬 수 있겠으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급하게 한 조치를 넘어 돈과 돈을 모으고 싶은 욕구 등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흐르게 해야 한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더 단단한 산업 정책이나 자본시장 개혁안 등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아울러 보유 과세 강화 등 부동산 보유 자체를 부담스럽게 하는 조치들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정책실장으로서 집값과 싸웠을 때의 일이다. 강남지역을 지나가다 부동산 관련 업체가 세로로 크게 써 붙인 플래카드를 보았다. ‘강남은 흔들리지 않는다.’ 정부의 온갖 조치를 자신 있게 ‘비웃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며 이 이야기를 했다. 동석한 누군가가 말했다. “무슨 수를 써 봐라. 조금 있으면 다시 올라간다. 다들 그렇게 믿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믿음을 깨부술 수 있을까? 더 크고 더 근본적인 고민, 그리고 서킷 브레이커 이상의 대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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