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제약사들이 전반적으로 전문의약품 시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복합제 제품들이 실적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네릭 시장의 과포화에 따른 실적 부진을 복합제로 메우는 모습이다. 다만 유사 조합의 복합제가 무더기로 등장한 시장에서는 시장 진입 시기와 제약사의 영업력에 따라 품목간 실적 편차가 컸다.
8일 의약품 조사기관 유비스트의 자료를 보면 두 개 이상의 약물을 결합한 복합제 제품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매출 1위 유한양행은 ‘로수바미브’와 ‘듀오웰’ 2개의 복합제가 상반기에 100억원에 육박하는 매출로 간판제품으로 도약했다.
지난해 출시된 로수바미브는 고지혈증치료제 ‘로수바스타틴’과 ‘에제티미브’로 구성된 복합제다. 로수바미브는 유한양행의 강력한 영업력을 앞세워 출시 2년째에 연 매출 100억원 돌파를 예약했다. 로수바미브는 알보젠코리아가 임상시험을 수행, 허가받은 약물로 알보젠이 유한양행에 공급한다.
지난 2015년 허가받은 듀오웰은 상반기에 83억원어치 처방됐다. 전년대비 41.1%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듀오웰은 고혈압치료제 ‘텔미사르탄’과 고지혈증치료제 ‘로수바스타틴’이 결합된 약물로 유한양행이 자체 임상시험을 통해 개발한 첫 복합신약이다. 한미약품, 대웅제약, LG화학 등에 이어 후발주자로 고혈압·고지혈증 복합제 시장에 진입했음에도 가파른 성장세를 나타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로수바미브와 듀오웰이 올해 매출 100억원을 넘어서면 2010년 이후 유한양행이 허가받은 약물 중 처음으로 ‘연 매출 100억원’ 제품을 배출하게 된다. 장기간 회사의 고민이었던 신제품 고갈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주는 셈이다.
한미약품은 국내제약사 중 복합제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며 내수 시장에서 양호한 실적 흐름을 보였다.
고지혈증 복합제 ‘로수젯’(로수바스타틴+에제티미브)은 상반기에 178억원의 원외 처방실적을 기록하며 전년대비 2배 이상 상승했다. 당초 에제티미브 성분의 물질특허는 지난해 4월 만료 예정이었지만 한미약품은 에제티미브에 대한 특허 사용권리를 특허권자인 MSD로부터 확보하며 경쟁사들보다 5개월 먼저 시장에 진입하는 영리한 전략을 구사했다. 경쟁사들보다 한발 빠른 시장 선점은 매출 증대로 이어졌다.
한미약품이 가장 먼저 내놓은 고혈압·고지혈증 복합제 ‘로벨리토’도 상반기 98억원어치 처방되며 순항을 이어갔다. 로벨리토는 고혈압치료제 '이베사탄'과 고지혈증치료제 '아토르바스타틴' 두 개의 성분으로 구성된 복합제다. 로벨리토는 한미약품과 사노피아벤티스가 공동으로 개발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은 약물이다. 양사는 임상시험 단계부터 긴밀한 협력을 통해 지난 2013년 로벨리토의 개발에 성공했다.
속쓰림 부작용을 줄인 진통제 ‘낙소졸’은 상반기 61억원의 처방실적을 기록, 회사 실적에 기여했다. 낙소졸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 약물 '나프록센'과 항궤양제 ‘에소메졸’이 결합된 복합제다. NSAIDs 약물을 복용하는 관절염 환자들은 속쓰림 같은 위장관계 부작용이 흔히 발생해 항궤양제 등을 별도로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 개발한 제품으로 위장관계 부작용을 사전에 차단하고 관절염 증상을 치료한다. 아스트라제네카가 낙소졸과 유사 성분의 복합제 ‘비모보’를 먼저 국내 시장에 내놓았지만 상반기 처방액은 낙소졸이 다소 앞섰다. 비모보의 올해 6월까지 누적 원외 처방실적은 57억원이다.
한미약품의 간판 복합제 ‘아모잘탄’은 상반기 333억원의 처방실적을 기록하며 여전히 복합제 시장을 주도했다. 지난 2009년 허가받은 아모잘탄은 두 개의 고혈압치료제(암로디핀+로사르탄)으로 구성된 제품으로 국내업체가 개발한 최초의 고혈압 복합제다. 아모잘탄은 출시 직후부터 가파른 성장세를 나타냈고 매년 5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한미약품의 효자제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종근당, 대웅제약, CJ헬스케어 등도 복합제 효과를 누렸다.
종근당의 고혈압복합제 ‘텔미누보’는 상반기에 149억원의 원외 처방실적을 기록했다. 종근당이 자체 개발한 제품 중 ‘리피로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실적이다. 리피로우는 고지혈증치료제 ‘리피토’의 제네릭이다. 텔미누보는 두 개의 고혈압약 성분(텔미살탄+S암로디핀)을 함유한 제품으로 종근당이 개발한 첫 복합신약이다. 지난해 283억원의 처방액을 기록한데 이어 올해는 300억원을 넘어설 기세다.
대웅제약은 고혈압·고지혈증 복합제 ‘올로스타’(올메사탄+로수바스타틴)가 상반기 68억원의 처방실적을 나타냈고 고지혈증복합제 ‘크레젯’(로수바스타틴+에제티미브)도 31억원어치 처방됐다. 복합제의 원조격으로 평가받는 위장약 ‘알비스’는 192억원을 기록, 간판 제품 역할을 충분히 했다. 대웅제약이 지난 1993년 허가받은 알비스는 산 분비를 억제하는 `라니티딘`, 헬리코박터 파이로리를 억제하는 `비스무스`, 점막보호작용을 하는 `수크랄페이트` 등 3가지 성분으로 구성된 복합제다.
CJ헬스케어의 고혈압복합제 ‘엑스원’(암로디핀+발사르탄)은 95억원어치 팔리며 새로운 간판 제품 입지를 다졌다.
하나의 알약으로 두 개 이상의 질병을 치료하는 복합제의 편의성이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주효한 것으로 분석된다. 복합제는 두 개의 약물을 따로 복용하는 것보다 경제적이다. 제약사들이 제네릭 시장의 과포화로 영업력을 복합제 영역에 집중하면서 시장에서의 관심도 더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복합제 제품이 모두 시장에서 위용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LG화학의 고혈압·고지혈증 복합제 ‘로바티탄’은 같은 성분의 ‘듀오웰’ 출시 시기가 1년 앞섰음에도 매출은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로바티탄의 상반기 원외 처방실적은 27억원이다. 제품의 시장성은 비슷하지만 영업력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알보젠은 ‘로수바스타틴+에제티미브’ 복합제를 유한양행, 동아에스티, 제일약품, 한독, 경보제약 등에 공급하는데 알보젠을 포함해 6개 제품 중 유한양행과 경보제약을 제외한 4개 제품은 상반기 처방실적이 10억원에도 못 미쳤다.
녹십자, 보령제약, 명문제약, 신풍제약 등이 내놓은 고지혈증 복합제 제품들도 대부분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복합제의 시장성은 크지만 동일 조합의 제품이 무더기로 등장하면서 시장을 나눠가진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복합제는 환자들에게 복용 편의성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효과가 있어 매력적인 시장이다"면서도 "한정된 시장 규모에서 시장 진입 시기와 경쟁업체 수를 고려하지 않고 시장에 진입하면 개발비용만 날릴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