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국정원 적폐청산TF 조사로 국정원 정치 공작에 청와대 지시가 있었다는 점이 확인됐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열흘이 지난 현재까지도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언론이 앞장서며 ‘윗선’으로 이명박 정부를 향한 검찰의 수사가 가시권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이미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이를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 의뢰하기로 방침을 정해 이명박 정부에 대한 검찰 수사는 시간 문제라는 분석이 앞선다. 다만 4대강·자원외교·방산비리 등 이른바 ‘사자방’ 비리를 필두로 ‘제2롯데월드 인허가 유착’ 등 이명박 정권 비리가 줄줄이 새 정부 사정 리스트에 올라온 터라, 검찰의 칼끝이 직접 이 전 대통령을 겨냥할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어찌 보면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하나같이 헌정 질서 파괴범죄로 지목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대 범죄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길목마다 이 전 대통령의 흔적들이 너무도 짙게 깔려 있다. 4대강 사업은 3번의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가 있었지만, 실체적 진실에서 허점을 드러냈다. 성남공항의 활주로 방향까지 바꿔가면서 인허가를 내줬던 제2롯데월드,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이 잇따라 발발했던 이명박 정부에서 쉽게 결정 내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 안보관의 모순(矛盾)이다.
언론이 앞장서서 검찰의 수사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정원을 조종해 조직적인 여론조작으로 민의를 왜곡한 것은 정치개입 이전에 민주주의 파괴행위이자 국기문란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의 국정원은 대선에 개입했고, 박근혜 정권은 이에 대한 규명을 가로막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두 정권의 국기문란 행위의 이해관계가 물고 물린 상황에서 전 정권 비리를 들춰내는 것은 ‘제 발등 찍기’가 되는 구도인 것이다.
때문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 개인 비리에 초점이 맞춰진 박근혜 정권에서의 검찰 수사는 상처만 남겼다.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은 혼외자 건으로 청와대에 의해 쫓겨났다. 윤석열 당시 수사팀장(현 서울중앙지검장)은 좌천됐다.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은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반대하며, 사사건건 훼방을 놓기 일쑤였다.
그로부터 4년 후 검찰은 다시 국정원 댓글 사건 재수사를 위한 라인업을 구축했다. 10일 검찰 차·부장급 중간간부 인사를 단행하면서 서울중앙지검 공안라인을 사실상 국정원 댓글사건 재수사에 최적화되도록 구성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은 사실상 ‘한 몸’으로 얽혀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명박 정권이 깔아놓은 적폐의 길을 박근혜 정권이 이어받은 셈이다. 지난 정권에 묻혀 있던 이명박 정권의 비리가 봉인이 해제되듯, 진짜 적폐청산 작업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