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주의 과학에세이] 할리우드의 수학 사랑

입력 2017-08-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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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영국왕립학회가 개최한 수학 분야 학회에서 할리우드 영화사인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기술책임자(CTO)가 기조 강연을 했다. 몇 년 전에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 담당 부사장이 미국 수학회의 학술대회에 와서 강연하는 걸 재미있게 들은 적이 있어서 비교도 할 겸 흥미롭게 들었다. 도대체 영화사 임원들이 왜 수학자들 앞에서 강연을 하는 걸까.

아마도 영화의 수익성과 관련이 있으리라 싶어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영화 흥행 성공의 최고 기준은 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1000억 원이다. 사후에 비디오 렌털이나 TV 판권 등의 수입은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극장에서 관객이 낸 돈만 센다. 1993년의 ‘주라기 공원’이 처음으로 10억 달러 고지를 넘은 뒤로, 이제까지 이 기준을 넘은 영화는 총 30개다.

그중 최고 수익을 낸 영화는 2009년의 ‘아바타’인데, 영화 한 편으로 극장 수입만 3조 원 이상이다. 사후 수입까지 합친다면 5조 원 이상을 벌었으니, 이쯤 되면 영화산업이라는 표현이 수긍이 간다. 수익이 20억 달러를 넘은 영화는 딱 3개인데, ‘아바타’ 외에 1997년의 ‘타이타닉’과 2015년의 ‘스타워즈’ 속편이다. 이젠 30억 달러 고지를 넘을 영화가 언제 나올지 설왕설래 중이다.

1조 클럽에 진입한 30개 영화의 면면을 보면 컴퓨터 그래픽스(CG)를 포함하는 특수효과가 광범위하게 사용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제 특수효과는 영화에 재미를 더하는 양념이 아니라 흥행 성공의 주역이 된 것이다. 영화사들이 이 분야에 갖는 관심과 투자가 이해가 된다.

물감을 얼굴에 바르는 수준의 특수효과가 아니라, 캐리비안 해적의 배로 몰아치는 태풍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 특수효과는 수학 방정식을 풀어서 한다. 그래서 영화사의 고위 임원들은 수학자들과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전문성을 가진 수학자를 직접 고용하기 위해서 수학자들의 학회에 와서 소통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요즘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5편이 개봉되어 인기가 있다고 한다. 2003년에 처음 개봉된 시리즈에서 2개 영화가 10억 달러 고지를 넘었고, 시리즈의 극장 수입만 44억 달러라는 공전(空前)의 기록을 냈다. 이 영화에 기여한 사람들 이름이 화면에 흘러내리는 마지막 부분에 론 페드키유라는 이름이 나온다. 대부분의 영화팬에게 생소한 이름이지만, ‘아카데미상을 두 번 수상한 수학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사람이다.

미국 UCLA 대학에서 응용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페드키유 박사는 가상실험에 물리 법칙을 적용하는 연구(‘피스뱀·PhysBAM’)로 스탠퍼드대 전산학 교수가 됐고 할리우드의 명사가 됐다. 이 방식은,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는 장면을 상상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중력 법칙을 적용해 운석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표현해낸다. 캐리비안 해적의 배로 몰아치는 폭풍과 범람하는 해일을 유체역학의 나비어스톡스 방정식을 풀어서 변화하는 모습을 예측하고 화면에 뿌려낸다.

할리우드 감독들은 그 결과가 만들어내는 생동감에 열광한다. 전통적 방식으로는 도저히 그런 사실감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번 이 방식을 써보면 이전 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페드키유박사는 직접 영화의 CG에 참여하지 않지만, CG를 위한 수학적 플랫폼을 제공해서 명성을 얻었다. 플랫폼의 시대는 여러 모양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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