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24일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모(42) 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필리핀에서 살인 혐의로 기소된 전 씨가 현지 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기 전에 구금된 5년여 기간을 국내 형량에 포함해야 하는지 여부다. 형 확정 전에 구금된 기간을 '미결 구금일수'라고 부른다.
대법원은 외국에서 실제로 형이 집행된 사람에 대해서만 '미결 구금일수 산입'이 허용된다고 봤다. 전 씨의 경우 형이 확정되기 전에 구금돼 재판을 받다가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됐으므로 형이 집행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외국의 형사절차는 국내의 형벌권 행사와 별개의 것"이라며 "해당 국가의 형사보상제도에 따라 그 구금기간에 상응하는 금전적 보상을 받음으로써 구제받을 성질의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반면 고영한·김창석·조희대·김재형·조재연 대법관 등 5명은 반대의견을 냈다. '미결 구금과 형의 집행은 판결 선고 전과 후라는 차이가 있을 뿐 신체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으므로 서로 다르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다.
이 중에도 김창석 대법관은 "헌법불합치 결정의 취지에 비춰 봐도 미결 구금과 형의 집행을 달리 취급할 수 없고, 외국에서 받은 형 집행과 외국에서 당한 미결 구금 또한 달리 취급할 수 없다"고 보충의견을 냈다.
형법 7조는 외국에서 형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집행되면 국내에서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12월 개정됐다. 헌법재판소가 이 부분을 재판부 재량으로 결정하게 하면 안 된다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뒤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형법 7조 적용 대상이 외국에서 실제로 징역형, 벌금형 등 형이 집행된 사람에 한정되고, 미결 구금을 당한 데 불과한 사람은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전 씨는 2005년 10월 필리핀 세부에서 피해자 A(30) 씨와 금전 문제로 다투다가 흉기로 찔러 과다 출혈로 사망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필리핀 현지 법원은 2010년 10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전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즉시 석방됐다. 하지만 지난해 3월 귀국한 뒤 전 씨는 같은 혐의로 다시 구속 수감됐다. 1, 2심에서 각각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