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풍경] 개를 키워보면 알게 되는 것들

입력 2017-08-2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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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CA MINOLTA DIGITAL CAM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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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집 마당에서 개를 키웠다. 요즘 집 안에서 키우는 작은 애완견이 아니라 집을 지키고, 나중에는 팔려 가기도 하는 큰 개였다. 바로 옆에 사는 작은집도 개를 키웠다. 두 집의 할아버지가 형제니까 할아버지들도 늘 왕래하시고, 가족들도 늘 왕래했다.

사람이 친하니 당연히 개들도 친해져 사람 따라 왔다 갔다 했다. 어떤 때는 먹이도 같이 먹었다. 더러 밥그릇 때문에 으르렁거리기도 했지만, 큰집, 작은집 왕래가 빈번하니 개들도 두 집이 친척인 걸 아는 것 같았다.

식구가 많으면 늘 잔반(殘飯)이 나오니까 개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그런 집 아이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면 개들도 사람을 따라 마당 바깥까지는 따라와도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왔다가도 이내 자기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해선지 마당을 벗어났다. 남의 집 개 밥그릇엔 큰 개도 작은 개도 얼씬하지 않았다. 음식을 같이 먹고 나누는 큰집, 작은집 개들만 저희들도 친척처럼 지냈다. 잔치 때는 밤에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마루 밑에서 같이 잤다.

어른이 되어 집에서 개를 길러 보니 개가 사람을 참 많이 닮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래 같이 살다 보니 가족들이 쓰는 말을 개도 귀신처럼 알아듣는다. 아이들에게 “강아지 먹이 좀 줘라” 하면 그 말을 먼저 알아듣고 빨리 먹이를 내놓으라고 아이들에게 매달린다. 오래 키우던 개는 목욕하는 걸 참 싫어했는데, “목욕 좀 시켜라” 하면 그 소리가 나오기 무섭게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오빠들 오는가 내다봐라” 하면 현관으로도 뛰어가고 출입구 쪽 베란다로도 뛰어간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이 개가 3년만 지나면 여우가 되고 구렁이가 된다고 했나 보다.

사람 말만 잘 알아듣는 게 아니다. 하는 꼴도 사람과 거의 비슷하다. 사람만 상상 임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개도 상상 임신을 한다. 인형이나 작은 베개와 헛바람이 난 개는 수시로 침대 밑과 책상 밑, 장롱 구석을 파고든다. 실제로 헛배가 부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건 생리적 현상이라 하더라도 개는 또 천성이 사회적 동물이어서 서열 따지기를 사람만큼이나 좋아한다. 어느 집이나 개의 서열은 그 집에서 제일 끝이다. 그러나 부부만 사는 집이 아닌 다음엔 어느 집 개도 자신의 서열을 제일 끝에 두지 않는다. 이른바 서열 파괴와 서열 착각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그 집의 아들딸보다, 특히나 그 집의 막내보다 자신의 서열이 더 위인 줄 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막 대들기도 한다.

왜 그런 착각을 하는 걸까. 개는 그 집 대장에 대해 정말 개처럼 충성을 다하며 대장으로부터 받는 귀여움을 남다른 총애와 권력으로 여긴다. 그러니 자신이 그 집 아들보다 더 총애를 받는 줄 여기게 되고 여기에 바로 자기 서열과 권력에 대해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 사회라고 해서 개 사회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권력자의 곁을 지키는 위치가 되면 자신이야말로 권력자의 마지막 방패와 같은 수호자이며 최측극인 동시에 모든 권력이 다 제 손 안에서 나오는 줄 알고 설치게 된다. 멀리 갈 게 어디 있겠는가. 지금 이런저런 국정농단 사건으로 줄줄이 재판을 받고 있는 지난 시절 최측근이라는 자들의 모습이 바로 본분 착각에 빠진 개의 모습과 무엇이 크게 다르겠는가.

그것이 어쩔 수 없는 그들의 사회성인 것이다. 사람이 잘못한 일로 괜히 개들만 이렇게 억울한 비유를 당한다. 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있어도 나쁜 개는 없다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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