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키워낸 희망의 나무를 잘 가꾸어 주시기 바랍니다.
철도 초년생으로 여러분 앞에 선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109년 철도역사에서 제가 여러분과 함께 했던 시간은 짧았지만, 막상 떠나는 자리에 서게 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불철주야 철도의 미래를 고민하며, 저와 여러분이 철길 위에서 함께 땀 흘렸던 시간들이 더 없이 아름답고 소중했던 순간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합니다.
취임 당시 철도는 중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철도가족 여러분!
2년 7개월 전 취임식에서 저는 “철도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철도에 대한 편견과 국가 정책적 지원의 부족이 만든 천문학적인 부채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공기업으로 출범하자마자 소위 ‘유전게이트’가 터졌습니다. 우리 직원들은 “우리가 과연 뭘 할 수 있을까?”하면서 망연자실하고 있었습니다.
또, 겉모양만 공기업이라는 간판을 달았지 솔직히 말해서 일 처리나 사고방식이나 시스템 전반에 걸쳐 여전히 관료문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외람되게도 저는 철도가 중병에 걸렸다고 진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희망과 비전이 필요했습니다.
“적자타령 이젠 지긋지긋하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희망이 없다.” “정부는 지원 약속은 지키지도 않으면서 자구노력만 하라고 한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적자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취임 직후 철도현장을 순회할 때 여러분들이 저에게 들려주던 자조 섞인 목소리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저는 한 순간도 여러분들의 그 정직한 불만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희망과 비전이 필요했습니다. 명예도 회복해야 했습니다.
철도를 바르게 세우는 것을 가장 크고 당면한 목표로 삼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수치로 나타나는 경영정상화는 물론이고 정부와 고객, 계열사, 노조와의 관계 등 모든 이해당사자와의 관계도 정상화시켜야 했습니다.
투명하고 깨끗한 철도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철도의 미래를 당당히 밝힐 수 있는 철도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또한, 철도뿐만 아니라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도 우리 열차가 북녘 땅을 지나 유라시아 대륙으로 달려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루지 못할 꿈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야 할 현실적 목표로 설정하고 노력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우리 자신조차도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을 우리는 해냈습니다.
다들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자신조차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적처럼 해냈습니다. 짧은 시간에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를 이루어냈습니다.
효율화만이 살길이라는 집념으로 채산성 없는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계열사를 통폐합하는 등 사업 전반에 걸쳐 대수술을 단행했습니다. 그 결과, 엄청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고 모든 계열사가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할 때는 비용과 수익 개념을 적용하였습니다. 권한을 주되 책임을 지게 했습니다. 100년 관료조직에서 벗어나서 성과를 직접 관리하고 책임을 지는 기업형 조직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용산역세권개발사업을 비롯한 부대사업의 성공적 추진으로 오래오래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하였습니다.
고객서비스도 객관적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KTX서비스가 국제공인기관인 SGS로부터 인증을 받았습니다. 국내 최초입니다. 고객만족도 역시 획기적으로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청렴도는 또 어떻습니까? 지난해 국가청렴도 평가에서는 가장 큰 폭으로 청렴도가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마침내 지상목표인 경영정상화 고지에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경영정상화라는 고지에 올라섰습니다. 지난해 철도 역사상 처음으로 흑자결산이라는 기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장부상의 흑자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명예가 회복되었다는 사실에 더욱 뿌듯해 했습니다.
더구나 남북철도 시험운행을 거쳐 상시운행도 하게 되었습니다. 화물열차의 저 힘찬 기적소리는 장차 우리 열차가 여객과 화물을 가득 싣고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나갈 희망의 나팔소리임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우리의 국제적 위상도 몰라볼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각종 국제회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굵직굵직한 국제행사를 한국에 유치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흑자경영의 날개를 달고 유라시아 대륙을 거쳐 세계 곳곳을 힘차게 달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철도 100년을 열어갈 희망과 비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이 기적의 주인공들입니다.
사랑하는 철도가족 여러분!
이 모두가 여러분이 땀 흘리며 노력해주신 결과입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이 기적의 주인공들입니다. 어찌 희생과 고통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여러분은 묵묵히 따라주셨습니다. 변화의 고통을 감내하며 부족한 저를 믿고 끝까지 함께 해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너무나도 자랑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우리 철도는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올곧고 무성한 나무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혹한 비바람이 몰아쳐도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큰 가닥을 잡았습니다. 탈선해 있던 열차가 제자리로 돌아와서 정상적인 속도로 달리게 되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상궤도에 올라섰기에 제 임무를 마치고자 합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제 임무를 마치고자 합니다. 우리 철도가 완전히 정상궤도에 올라선 만큼, 이제는 여러분의 힘으로 얼마든지 훌륭하게 운행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목마름 끝에 찾아온 희망이라는 나무를 끝까지 잘 가꾸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철도가족 여러분!
돌아보면 후회와 허물만 남는 것이 인생사라고 했습니다. 재임 기간 동안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로 임했습니다만, 제 삶의 여정만큼이나 아픔과 허물도 있었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아쉬움도 있지만 여러분이 마무리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이해당사자들과의 관계를 포함하여 모든 것이 정상화되었다고 자부하지만, 정부와 노동조합과 동반자로서 순탄한 길을 걸어오지 못한 것은 끝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효율화가 노사갈등의 원인이었지만 효율화는 중단없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효율화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효율화 없이는 미래도 없다는 것만큼은 자명합니다.
또한, 정부의 철도정책이 40년 만에 올바른 방향으로 선회함에 따라 정부와의 관계도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마침표를 찍은 것은 아닙니다.
노조와 정부와의 관계, 둘 다 정상화의 단계일 뿐 아직 안정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춧돌은 놓았으니 여러분이 반드시 바로잡아주실 것이라고 믿겠습니다.
지독히도 철도를 사랑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철도가족 여러분!
이제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입니다. 몸은 피곤하지만 발걸음만큼은 여러분 덕분에 가뿐합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제 옷에 달아놓은 코레일 배지를 떼어내야겠지만, 저는 이 배지를 평생 소중하게 간직할 것입니다.
사실 저는 대학 때도 배지를 단 적이 없었고, 국회의원 시절에도 공무상 외국에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배지를 달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래봬도 내가 이런 사람이오” 하면서 특권을 요구하는 것으로 비쳐질까 염려해서였습니다.
그런 제가 철도에 몸담은 후에는 한번도 배지를 떼어낸 적이 없습니다. 철도가 오랜 홀대를 받아왔으니 제가 단 배지는 특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결코 부당하게 홀대받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거울 앞에서 배지를 매만지는 것은 저에게는 엄숙한 의식을 행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반드시 철도인의 자긍심을 살리고 명예를 회복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이제는 이 배지를 홀가분하게 떼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랑스럽게 간직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언제 어떤 자리에 서 있든, 저는 이 배지와 함께 영원한 철도인입니다. 저를 지독히도 철도를 사랑했던 사람으로 기억해 주신다면 가장 큰 영광으로 삼겠습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몰고 가는 기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달리는 것을 제 생애 최고의 꿈이자 보람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철길에서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2008년 1월 21일 李 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