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칼럼] 생리대 흑역사

입력 2017-08-3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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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서구 여성들은 아프리카 여성들과 비교하면 생리 기간이 2~3배에 이른다고 한다. 아프리카 여성들은 이른 나이에 출산을 시작하고, 다산(多産)을 특징으로 하는 데다 모유 수유를 하기 때문이란다.

서구에서도 산업혁명 이전에는 여성의 생리 기간이 지금보다 현저하게 짧았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네도 예외는 아닐 듯싶다.

근대화·산업화를 거치면서 여성의 생리 시작 연령은 빨라졌고 초혼 연령은 뒤로 밀리면서 생리 기간이 연장된 데 더하여, 평균 2명 이하의 출산율에다 모유 수유에 비우호적인 환경으로 인해 여성들은 그 어느 때보다 오랜 기간 생리를 경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여성들 다수의 건강에 빨간 경고등이 켜졌다는 추측이 무성하다. 하지만 정작 생리 기간의 연장이 여성들 몸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고 한다.

이번 생리대 안전성을 둘러싼 공포와 우려, 논쟁과 파장을 접하자니 생리대의 흑역사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베이비붐 세대 여성들에게 생리대의 기억은 아마도 부끄러움 혹은 창피함, 아니면 매우 귀찮음 정도 아닐까 싶다.

지금의 할머니 세대는 어린이용 기저귀와 동일한 소재의 일명 ‘갯짐’을 사용했으니, 매번 삶아야 하는 번거로움에다 착용할 때의 불편함은 물론, 행여 들키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까지 참아내야만 했었다. 누군가 일회용 생리대를 처음 사용하던 순간을 “타자기 쓰다 컴퓨터 쓰는 기분이었다”고 표현하는 통에 모두 손뼉 치며 웃었던 기억도 난다.

성교육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할머니 세대에게서, 처음 생리하던 날 “이제 꼼짝없이 죽을병에 걸렸나 보다” 하며 충격을 받았다는 회상을 듣는 일은 다반사였다. 수업이 끝나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의자가 궁둥이에 붙어 나와 “죽을 만큼 창피했다”는 엽기적인 고백에서부터, 생리혈이 겉옷까지 묻어나오는 바람에 어쩔 줄 몰라 했던 경험담을 지나, 같은 식구라도 행여 오빠나 남동생에게 들킬까 보아 전전긍긍했던 이야기 등은 여성들 사이에 익숙하게 공유되고 있는 기억들이다.

처음 일회용 생리대가 시판되기 시작했을 때도 생각난다. 처음엔 생리대를 약국에서만 살 수 있었다. 동네 약국의 약사가 여자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남자 약사가 지키는 경우엔 차마 “생리대 주세요”라고 말할 수가 없어 엄마에게 부탁하곤 했다. 약국에선 생리대를 신문지로 둘둘 말아 고무줄로 묶어 팔거나 검정 비닐백에 담아 주곤 했는데, 생리대를 왜 그토록 창피하게 생각했었는지 지금은 후회막심(後悔莫甚)이다.

요즘처럼 크기도 가지각색이고 종류도 다양한 데다, 색깔에 질감까지 다채로운 생리대를 만인이 오가는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당당히 고를 수 있는 시대가 오리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때가 오래전 일도 아니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딸이 생리를 시작하면 아빠가 딸을 위해 ‘축하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하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을 아니 느낄 도리가 없다.

젊은 세대일수록 생리대 꿔 달라는 부탁도 자연스럽게 하고, 생리통 때문에 고통스럽단 호소도 당당하게 하고, 심지어 해외직구만이 가능한 생리컵 구매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한다니, 그저 창피해하고 부끄러워만 했던 세대로선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이다.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주범으로 부상한 생리대 위험은 일찍이 앤소니 기든스와 울리히 벡이 주장했던 ‘제조된 위험(manufactured risk)’의 전형적인 예임이 분명하다. 발음하기조차 힘든 화학물질들이 인체에 위험을 야기하는 요인이라고 추정하는 보도가 쏟아지는 가운데, 과연 어떤 성분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위험을 야기하는지, 왜 그러한지, 동물에게 안전하다 하여 인간에게도 안전한 것인지, 똑똑해진 여성 소비자들이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정확한 답을 얻고 현명한 해결 방안을 손에 넣을 수 있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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