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달걀과 계란 그리고 닭알

입력 2017-08-3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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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강원도 산골마을에선 달걀이 최고의 선물이었다. 어머니들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가을이면 정성껏 마련한 선물을 들고 학교를 찾았다.

산에서 직접 뜯어다 정성껏 말린 나물, 텃밭에서 갓 따 온 고추·상추·당근, 집에서 만들어 익힌 막걸리…. 선물이라고 말하기 쑥스러워서였을까. 어머니들은 자식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운동을 잘하든 못하든 머리를 조아린 채 선생님을 만났다. 양계장에서 달걀 꾸러미를 사 온 어머니들은 그나마 좀 당당했다. 짚으로 엮은 꾸러미 안에는 하얀 달걀이 촘촘히 들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엔 흰색 달걀이 많았다. 그러다 1980년대 신토불이(身土不二) 바람이 불면서 갈색 달걀이 인기를 끌었다. 토종닭이 낳은 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흰색 달걀, 갈색 달걀 모두 외래종 닭이 낳은 것이다. 가장 좋은 달걀은 뭐니 뭐니 해도 금방 낳아 따끈따끈한 것이다. 갓 지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에 신선한 달걀을 ‘탁’ 깨뜨려 넣고 몽글몽글한 노른자에 간장, 참기름까지 부어 슥슥 비벼 먹으면 꿀맛이 따로 없다.

그런데 2017년 여름 대한민국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살충제 달걀 파동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먹을거리 가지고 장난치는 ×들은 엄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태는 어느 정도 마무리됐지만, 파문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식품안전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 부처가 나서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특히 이른바 ‘농피아(농촌진흥청 + 마피아)’ 의혹을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만난 몇몇 지인은 ‘살충제 달걀 파동’ 관련 언론 보도가 국민들을 헷갈리게 한다고 말한다. 신문들을 살펴보니 불만을 터트릴 만하다. 같은 신문의 기사인데 어떤 면에는 계란이, 또 다른 면엔 달걀이 나온다. 심지어 한 기사에서조차도 두 단어가 왔다 갔다 한다. 방송사도 마찬가지이다. 자막에 계란과 달걀이 섞여 나온다. 하나의 식품인데 어떤 이름이 맞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맞다. 달걀은 어원이 ‘닭의 알’인 토박이말이다. ‘닭의 알 → 달긔알 → 달걀’의 과정을 거쳤다. 계란(鷄卵)은 한자어 그대로 ‘닭이 낳은 알’을 뜻한다. 순우리말과 한자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표준국어사전은 달걀을 계란의 순화어로 제시하고 있다. 이왕이면 순우리말인 달걀을 쓰라고 권장하는 것이지, 계란을 쓰면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같은 이유로 계란보다 달걀을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

북한에서는 1954년 이후 달걀도 계란도 아닌 ‘닭알’을 문화어(우리의 표준어)로 삼았다. ‘닭 + 알’의 형태로, 발음이 [달갈]인 게 특이하고 재미있다.

달걀과 계란을 섞어 쓴 언론의 잘못은 무엇일까? 바로 명칭 표기의 통일성을 지키지 못한 데 있다. 최소한 한 기사에서만큼은 달걀이든 계란이든 하나의 단어를 써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궁금증 없이 기사를 술술 읽을 수 있다.

어제 저녁 들른 동네 마트 매대에는 4000원대 달걀들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달걀을 집어 들지 않았다.

한때 ‘삶 = 달걀’이라는 넌센스가 유행한 적이 있다. 삶은 사는 일, 살아 있음 혹은 목숨과 생명을 뜻한다. 삶과 동의어인 달걀이 삶에 어려움이 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제발 먹는 거 갖고 장난 좀 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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