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날카롭습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냉철한 시선으로 그를 지켜보는 눈이 많습니다. 임명 나흘 만에 자진 사퇴한 박기영 전 본부장 역시 이 같은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이런 상황에 임 본부장은 임명 직후 과기정통부 기자실을 찾아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 과학자들에게 믿고 돈을 줄 수 있는 선진적인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내년 우리나라 예산은 429조 원입니다. 9년 만에 씀씀이를 가장 크게 늘린 ‘슈퍼예산’인데요. 연구개발(R&D) 예산은 올해보다 0.9% 늘어난 19조6338억 원입니다. 새 정부가 강조한, 과학기술 역량의 ‘기초체력’을 다지기 위한 기초연구에도 무려 1조500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지요.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 역시 올해보다 866억 원(0.6%) 늘어난 14조1759억 원을 편성했고, 이 가운데 국가 R&D 예산의 약 34%를 차지하는 6조8110억 원도 과기정통부 몫이 됐습니다.
무엇보다 기재부가 쥐고 있던 예산한도 결정에 과기정통부가 참여하게 됐다는 게 큰 의미입니다. 지금까지는 기재부가 지출 한도(실링)를 설정해서 각 부처에 보내면 그에 맞춰 사업을 짰습니다. 과기정통부 같은 부처는 최종심의에만 참여했고, 이후 이 예산안이 다시 기재부를 거쳐 국회에 상정되는 순서였지요. 새 정부는 지출한도 설정부터 과기정통부를 참여시키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반면 이를 위한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은 6월 초 발의 이후 두 달이 넘게 상임위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내년 예산권이라는 이유를 들어 여당마저 관련법안 처리에 미온적이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현안이 쌓여 있는데, ‘분자세포생물학’ 권위자인 임 본부장이 얼마만큼 정치권과 타협해 현안을 풀어낼 수 있을지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옵니다.
그뿐인가요. “연구자들을 믿고 돈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그의 첫 마디에 여러 곳, 특히 야권에서 덜컥 우려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이유는 그가 임명 전까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몸담았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갖가지 연구비 부정의 온상으로 불릴 만큼 나랏돈을 쉽게, 그리고 허투루 쓰기로 이름난 곳입니다.
최근 감사원과 주무부처 감사 결과만 봐도 해마다 비슷한 부정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연구원 허위등록으로 인한 연구비 편취, 근무시간 조작으로 인한 연구비 부정취득, 법인카드 부정사용, 출장비 부정 등 해마다 연구비와 관련한 잡음이 이어지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바로 직전까지 근무했던 차관이 “연구자들을 믿고 돈을 주겠다”는 말에 우려의 시선이 쏟아진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가 말한 ‘믿음’에 ‘의심’이 이어지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요. 앞으로 우리는 이 왕차관의 행보를 주목해야겠습니다. 그가 쥐고 흔드는 막대한 돈은 바로 우리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