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최대 부동산 재벌 빈그룹(VINGROUP)이 자동차 제조업에 진출한다.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친환경과 자율주행 등 신기술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새로운 경쟁자가 더 늘어나는 셈이다.
빈그룹은 2일 베트남의 해운 요충지 락후엔(lach huyen) 국제항구 근처에서 자동차 공장 기공식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서 빈그룹은 베트남 북부 하이퐁에 공장을 건설하고 2025년까지 연 50만 대 생산 체제를 갖출 것이라고 발표했다. 자체 브랜드로 완성차를 제조하는 메이커는 베트남에서 빈그룹이 처음이다.
기공식에 참석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는 “국산차를 제조하는 프로젝트는 애국적이고 존경할 만한 획기적인 사업”이라며 빈그룹의 자동차 시장 진출을 반겼다.
빈그룹의 신차 브랜드 명칭은 ‘빈 퍼스트’다. 이 공장은 하이퐁의 경제특구에 확보한 335헥타르의 부지에 건설된다. 차체, 엔진 조립, 도장 등 모든 생산 라인을 갖춘다.
계획으로는 이르면 2018년 하반기에 전동 오토바이를 생산하고, 어느 정도 노하우를 축적한 뒤 2019년 후반에는 5인승 세단, 7인승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을 연간 10만~20만 대 생산할 방침이다. 그중에는 전기자동차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신차는 모두 유럽 기준에 맞춰 제조할 계획인데, 이는 연내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예상되는 유럽 수출을 겨냥한 것이다.
빈그룹은 가격 대비 고성능 자동차를 생산하는 노하우를 가진 중국 인도 업체들과 제휴를 맺어 기술을 공여받는다는 방침이다. 부품은 자동차 산업이 집적된 태국 등지의 업체로부터 납품받는 한편, 현지 조달 비율을 6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차체 디자인은 ‘알파로메오’ ‘애스턴마틴’ 등과 제휴를 맺고 있는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인 회사에 의뢰하기로 했다.
빈그룹이 베트남 최초로 자동차 자체 제조에 나서는 건 시장성 때문이다. 베트남은 부유층과 중산층이 급증하면서 자동차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작년 신차 판매 대수는 약 30만 대로 2014년의 약 2배로 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동차는 ‘녹다운’이라는 부품을 수입해 조립하는 방식으로 생산되고 있다. 베트남에서 유일한 자동차 대기업인 쯔엉하이자동차(THACO)도 한국 현대자동차, 일본 마쓰다 등의 차를 수탁 생산하는 처지다.
2018년부터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공동체의 합의에 따라 현재 30% 정도인 역내 관세가 아예 없어져 수입차가 베트남으로 대량 유입될 전망이다.
하지만 서플라이 체인도 없이 베트남에서 자동차를 생산한다는 건 결코 만만치 않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신차 시장 확대와 함께 베트남에서 자국산 자동차 수요는 높아지겠지만 차체 개발이나 부품 조달 등에 대한 불안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베트남 정부는 자국의 자동차 산업을 정착시키기 위해 전방위적 지원 사격을 아끼지 않는다. 새로 도입한 세제 우대 정책은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업계, 경제특구에 신설한 회사 등은 총리의 결정에 따라 원래 25%인 법인세가 15년에 걸쳐 10%로 낮아진다. 또한 정부는 자동차 부품에 붙는 특별소비세를 자국 내 제조에 한해 전액 면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실현되면 대상이 되는 자동차 가격은 적어도 10~20% 저렴해질 것으로 보인다.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리조트, 학교, 의료, 소매 등 다각적으로 사업을 넓혀온 빈그룹에 자동차 시장 참여는 사업의 방점이라 할 수 있다. 응웬 비엣토 콴 부회장은 “세계적 수준의 자동차를 베트남에서 만들어 수출하고 싶다”며 “베트남 산업과 근대화에 기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