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초월해 생존 위협하는 기후위기
저탄소 경제체제 전환은 사실상 의무
에너지 산업 ‘新 성장동력’으로 육성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우리 경제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4일 서울 종로에 있는 기후변화센터에서 만난 한덕수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은 신(新)기후체제에서 에너지 산업이 큰 변화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우리 기업들이 지난 60~70년 세계 시장에 진출해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렸듯 기후변화가 제2 경제ㆍ산업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기후변화 대응을 기업 부담으로 인식했지만, 이제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 이사장은 ‘서울 기후-에너지회의 2017’ 행사가 기후변화에 대한 사회적ㆍ경제적 관심을 높이고, 우리 기술ㆍ지식의 수준을 높이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세계 경제만큼 관심이 많고 중요한 이슈가 기후변화 문제다. 신기후체제의 출범에 따라 한국이 제출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달성이 가능한가.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명시한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후 한국 정부부처와 국책연구소, 학계 등이 모여 기존 에너지와 기후변화 대응 정책 전환에 착수했고, 지난해 말 ‘제1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을 내놨다. 전환(발전), 산업, 건물 등 각 부문의 로드맵이 확정됐는데, 세부 추진계획을 다듬어야 하겠지만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파리협정 제6조에 의한 ‘국외 감축’이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 나가서 국외 감축 노력을 인정받게 되면, 충분히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이다. 저탄소 경제 체제로의 전환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닌 사실상 의무다. 따라서 저탄소 이행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에너지 시장의 무게중심이 아시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한ㆍ중ㆍ일 동북아 3국이 탄소배출권 시장 창설 등 다양한 에너지 협력 방안을 논의 중인 상황이다.
“지난해 모로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기후변화센터와 중ㆍ일 연구기관 공동으로 아시아 탄소시장에 대해 논의하는 사이드 이벤트가 있었다. 중국은 7개 지역에서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을 시범 운영하고 올해 국가 차원으로 확대 시행할 예정이었다. 일본도 이 문제를 탄소세로 봐야 할지, 배출권거래제로 봐야 할지 높은 관심을 보였다. 우리나라는 정부 차원에서 배출권거래제를 추진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로 그 경험이 많은 기여를 할 것이다. 한ㆍ중ㆍ일은 굉장히 큰 배출권거래시장으로 어느 시점에 통합할 것인가, 어떻게 제도적 조화를 이룰 것인지가 중요한 이슈다. 우리가 선두에 나서야 한다.”
-국가 간 협력이 어떤 기대 효과를 지니는가.
“국가 단위 거래시장은 규모가 작은데, 한ㆍ중ㆍ일 3국이 컨소시엄을 형성하면 굉장히 큰 배출권거래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개별 국가에서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파리협정 제6조에 의해 배출권에 대한 인정을 받으면 배출권을 현금화할 수 있다. 한국은 지난 70년 동안 개방과 세계화를 통해 성장해 온 것처럼 기후변화도 ‘개방’을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기술적인 연구가 많이 필요하지만, 통합은 당연히 가야 하는 방향이다.”
-기후변화로 인류가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와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해법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지 않다.
“맞아떨어지는 상황이 올 것이다. 탄소가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해로운 건 아니나, 기후를 변화시켜 기온ㆍ수면이 상승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유해물질로 보긴 힘들다. 매년 세계 수면이 0.3cm씩 올라가고 있고, 앞으로는 그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다. 이것이 위기로 인식되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에 의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국제적인 협약을 맺었는데, 핵심은 신재생ㆍ청정에너지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석탄에너지는 기술이 좋아지고 있지만, 탄소를 배출해 기후변화를 일으킨다. 기후변화가 지구의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는 시점에, 기존 에너지에 대한 대응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우리 경제 여건과 국가 자원 등을 종합해 볼 때 어떤 에너지를 선택하고, 어떤 비율로 조합해야 할까. 에너지 믹스는 어떻게 가는 것이 합당한가.
“저탄소 에너지 중심으로 향해 간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더 높은 에너지 가격을 부담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현시점에서 신·재생에너지는 석탄보다 비싸지만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나야 하는 것은 기후변화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각 분야에서 엄청난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린(Green) 에너지 믹스’를 실현해야 한다.”
-신기후체제에 따른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이 생겨나고 있는데, 우리 기업들이 어떻게 활용할 수 있나.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해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렸듯 기후와 연관된 프로젝트나 정책ㆍ기술 이전을 통해 우리 경제가 다시 한번 도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다행히 한국이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저탄소 발전 등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부문이 많다. 시간을 소비할 여력이 없다. 가능한 한 빨리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야 한다. 한국전력과 LG CNS 컨소시엄이 괌에서 태양광 발전설비 프로젝트를 벌인 것처럼 많은 중소기업이 함께 진출해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부도 기업의 노력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국가 간 협약을 확대하고, 학계나 언론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원자력을 통해 탄소를 많이 감축해 온 측면이 있다. 원전 정책의 방향은.
“원전은 로드맵을 만들겠지만 독립적 규제 기능을 확립해야 하고, 국민이 원전에 대해 안심할 수 있도록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화의 장을 통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자발적 에너지 절약 분위기를 조성하는 수요 관리도 중요하지 않나.
“전력에 IT(정보통신)기술을 더한 스마트그리드는 소매가격에 거의 실시간으로 가변성을 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전력 소매 시장을 민간에 개방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반대다. 소매가격을 즉각 변화시키는 것은 한전이 더 빠르게 잘할 수 있다. 소매 가격이 변동되면 전기요금이 무조건 비싸지는 것이 아니다. 가격을 유연하게 해 전력소비가 줄어들고, 내가 내는 전기요금이 싸질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여기에는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이 필요하다.”
-‘한미 FTA 전도사’로 불렸는데, 최근 미국과의 협상 과정은 어떻게 보나.
“아직 결론을 내긴 이르고 서로의 의중이 무엇인지 더 파악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FTA 경제동맹으로 국제사회에서 대외신인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멕시코가 국가 부도 사태를 겪을 때 미국이 적극적으로 도운 것도 나프타(NAFTAㆍ북미자유무역협정)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미 FTA도 양국 모두에 필요하고, 한·미 군사 동맹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미국 의회에 형성돼 있다. 기본적인 원칙은 항상 상대방이 왜 이런 걸 요구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경제 동맹으로 크게 양자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대화하고 공통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한덕수 이사장은
한덕수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행정고시 8회로 옛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82년 부처 간 교류 때 옛 상공부 미주통상과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상공부 중소기업국 국장, 대통령 비서실 통상산업비서관, 특허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미국과 FTA 협상을 시작할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재직했으며, 이후 대통령 직속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 겸 대통령 한미 FTA 특보를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국무총리를 맡았다.
2009년 초 주미 대사에 임명돼 한·미 FTA의 미국 의회 비준을 이끌어 내기 위해 100명의 상원의원과 435명의 하원의원을 직접 만나 설득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무역협회장으로 활동하던 시절엔 한·중 FTA 타결에 큰 역할을 했다.
△1949년 전북 전주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석ㆍ박사 △행시 8회 △통상산업부 통상무역실장 △특허청장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주OECD 대사 △경제수석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국무총리 △주미국대사 △한국무역협회 회장 △기후변화센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