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정의 인사이트] ‘공무원 부역자’만 양산하는 적폐청산 안 된다

입력 2017-09-12 10:48 수정 2017-09-13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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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차장

‘적폐(積弊)’.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을 말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작업을 제1호 과제이자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적폐청산 움직임은 최근 들어 더욱 분주해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적폐청산위원회와 별도로 부처별로 적폐청산을 위한 기구가 속속 만들어지거나 운영이 검토되고 있다.

민주당은 11일 열린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대정부 질문에서도 국가정보원 댓글부대 사건과 강원랜드 채용비리 등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의 ‘적폐’를 부각했다. 당 적폐청산위원장을 맡은 박범계 의원은 이낙연 국무총리를 향해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24%에 불과했다”고 지적하며 적폐청산 TF의 현황 설명과 평가를 주문했다. 이에 이 총리는 “현재 (법무부를 제외한) 19개의 부처가 명칭이나 활동은 부처마다 다르지만 적폐청산 특위라고 부를 기구를 가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새 정부의 적폐청산은 사법부·재벌·언론 개혁과 과거사 정리 등을 위한 작업에 정조준돼 있다. 이를 위해선 이전 정권에서 수행된 정책과 이를 뒷받침해왔던 예산을 꼼꼼히 검증해 보고 여기에 연루된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따져 물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타깃은 법무부, 고용노동부, 환경부, 교육부, 통일부,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정보원 등 지난 정권에서 핵심 국정과제를 수행했던 부처들이다.

최근 청와대가 따로 19개 부처와 정부 기관에 적폐청산을 위한 부처별 TF 구성 현황과 운용 계획을 알려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하달해 논란이 될 정도로 ‘적폐정책’ 솎아내기 작업은 부처 내부에서 가속도가 붙고 있음이 분명하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적폐 정책을 담당했던 이들이 현 정권의 공무원들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교육부가 국정교과서의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의 적폐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조사 대상은 국정교과서를 지시하고 결정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황우여·이준식 전 교육부 장관도 아니다. 결국 공무원이다. 윗사람의 정책 결정 지시를 받고 업무를 수행한 공무원을 ‘부역자’로 낙인찍는 것이 의미 있는 ‘적폐청산’인지 의구심이 든다. 각 부처의 적폐청산기구를 운영할 수장들도 현재의 1급 고위직 공무원들이 맡게 된다고 한다. 이전 정권의 적폐 정책을 만들고 실행했던 이들이 셀프 검증을 통해 같은 부처 내 공무원 길들이기에 나선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조만간 있을 부처 1급 인사에서도 이 같은 오류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적폐청산’이라는 과제에 어울리는 인사를 찾다 보면 전 정부에서 정책 추진의 핵심 역할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적폐로 몰리면서 이들 대신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은, 혹은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밀려나 있던 이들이 핵심 보직에 기용될 수 있다. 인재풀이 많은 부처라면 그나마 사정이 낫겠지만 규모가 작은 부처라면 더욱 난감해진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된다면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주의, 보신주의만 더욱 횡행할 수밖에 없다.

적폐를 뿌리 뽑으려면 조직, 사회, 국가 전반의 전방위적 개조와 혁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단순히 공무원 인사 물갈이나 정부 업무의 일관성·연속성을 해치는 정책 폐기가 ‘혁신’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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