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광림 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 의장의 어깨는 더없이 무겁다. 김 의장은 원내 제1야당인 한국당의 정책을 입안, 조율하고 여당과 다른 야당의 사이에서 끝없이 정책 대결을 고민해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이미 당 의장직을 한 번 맡았던 김 의장은 의장직을 다시 맡지 않을 생각이었다. 정우택 원내대표가 이현재 전 의장의 후임을 물색하며 김 의장에게 여러 차례 의장직을 제안했지만 고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김 의장은 “정 원내대표에게 제가 3명을 추천했지만 (정 원내대표는) 고민하겠다고만 하더라”며 “지역구 활동을 이유로 안동에 내려가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피해 다녔다”고 설명했다.
정 원내대표는 애초 경제기획원 시절부터 알고 지내 신뢰가 두터운 김 의장에게 의장직을 맡길 계획이었던 셈이다. 결국 김 의장은 정 원내대표의 계속된 설득에 마음을 돌렸다. 그리고 김 의장은 지난달 16일 의원총회를 통해 정책위의장에 추대됐다. 지난해 12월 당시 정진석 원내대표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지 8개월 만이다. 김 의장은 “보수의 정치인으로서 팔자려니, 운명이려니 하고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소회를 전했다.
정책위의장을 두 차례나 맡는 건 이례적이다. 김 의장이 한국당 내 대표적인 ‘경제통’ ‘정책통’이란 방증이기도 하다. 그는 경제기획원과 대통령 비서실장실 기획조정비서관을 거쳐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냈다. 경제관료로서 30여 년을 지낸 뒤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선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현 여의도연구원) 소장, 당 정책위부의장 등도 역임했다.
정부 고위직을 지낸 최종 이력만 보면 그는 다른 보수 정치인이 걸어온 길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김 의장은 안동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야간대학(영남대 경제학과)을 나와 행정고시에 합격했고, 처음 18대 총선에 나와서는 경북 안동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야당 의원의 야성(野性)도 충분히 갖춘 셈이다.
김 의장은 공수를 바꿔서 야당 의원이 된 소감을 묻자 “살아오는 과정에 산꼭대기가 있으면 골짜기도 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그 과정 중 하나”라며 “개인적으로는 여당 국회의원으로 조금 편하게 국회의원 생활을 해온 면이 있었는데 (지금은) 야당으로서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야당 정책위의장으로서의 답답함도 토로했다. 그는 “가자 힘든 건 당정회의가 없어지고 정보가 차단된 것”이라며 “여당 의장 시절엔 정부 측에 현장성과 전문성을 보완해주면서 당정회의만 30번을 가졌고, 당정 혼란을 없애고자 직접브리핑을 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자료 요구 등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관료) 후배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 올해는 일절 전화를 하지 않았다”며 “그랬더니 안동의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인) 이석주 선생의 생가 복원을 위해 중앙선 철로를 옮기는 예산이 3분의 1로 토막났다”고 했다. 지역구 의원인 동시에 야당 정책위의장이자 관료출신 의원으로서 짊어져야 할 무게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