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마광수에 대한 단상

입력 2017-09-1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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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의 한 건물을 올려다봤다. 대학 선배는 허름한 건물의 2층을 힐끔 쳐다보며, “여기가 바로 ‘장미여관’이 틀림없다”고 했다. 새내기 시절, 그렇게 우리는 ‘마광수’에 빠져들었다.

20대 초반 우리에게 그의 존재는 호기심이었다. “어떻게 생겼다더라” “강의는 어떻다더라” 대학을 갓 입학해 그를 본 적이 없는 신입생 사이에서는 마 교수는 늘 화두였다. 음란물로 지정되고 금서(禁書)가 된 ‘즐거운 사라’를 읽어 봤다는 것은 선배들의 흔한 술자리 무용담이 됐다. 1992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강의 중인 그를 구속한 작품이지 않나.

면직된 그가 학교로 돌아오자 또다시 화제의 중심이 됐다. 하지만 그는 담담했다. 강의를 통해 그는 특유의 차분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성(性)에 대한 담론을 이어갔다.

청강했던 ‘연극의 이해’에서 그는 ‘욕망’에 대한 과도한 억제는 비정상적인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하나의 판타지로 문학을 이해하되 솔직한 사회를 원한다고 했다.

내일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미래를 고민하다 보면 오늘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며 ‘벼락치기’가 행복하다고 했다. 게을러져야 행복할 수 있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했다. 마 교수의 말은 그마저도 지나친 경쟁 사회에 대한 역설이었다.

시간이 꽤 흐른 후 ‘2013년 즐거운 사라’가 출간됐다. ‘즐거운 사라’의 속편이다. 제목과는 반대로 주인공은 세상을 다 살아 버린 것 같은 무기력한 우울증 환자였다. 결국, 그녀는 자살을 택하고 만다. 마 교수는 있는 그대로의 날것을 금기시하는 우리나라를 풍자한 것이라고 했다.

우울증을 앓았던 그는 5일 사라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 교수의 목을 죈 것은 다름 아닌 스카프였다. 그가 말하고자 한 바는 무엇일까. 출간 25년을 맞은 ‘즐거운 사라’는 아직도 금서로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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