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군가를 설득하고 또한 누군가에 의해 설득당하며 살아가야 한다. ‘생떼’를 최대의 무기로 하는 유아기를 지난 인간의 설득은 인격에 의한 다스림이다. 설득은 상대방의 의견을 뒤로하고, 내 의견을 관철해 나가는 과정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그 입장을 이해하며, 서로 소통해 나가는 과정이다.
유대인 속담에 ‘말이 없는 아이는 배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유대인 엄마는 아이를 키울 때 언어 교육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정성을 쏟는다고 한다. 우선 아이의 말을 경청해서 심리 상태를 파악한 후 부모가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한다. 그 후에 토론과 논쟁이 이어지고 합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리는 “우선 내 말을 들어줘. 그러면 당신이 하는 말을 들어줄게”라며 상대보다 먼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마음은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철학자 하버마스는 대화의 올바른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먼저 서로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고, 그 내용이 참이어야 하며, 상대방이 성실히 지킬 것을 믿을 수 있고, 말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평등하고 수평적이어야 한다. 하버마스는 이렇게 이루어진 토론과 대화에서만 서로가 합리적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렇지 못한 대화, 혹은 논쟁과 토론은 그저 폭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불통의 시대’를 해결할 유일한 돌파구는 역시 대화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