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끼리끼리’ 문화 속의 해괴한 논리

입력 2017-09-1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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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해서 사퇴한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가 보수 논객 변희재 씨를 알고 지냈단다. 그를 학교 특강에 소개했고, 특강 후의 뒤풀이까지 참석했단다.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기를, 이게 그가 보수주의자인 증거 중의 하나란다.

기가 막힌다. 무슨 이런 해괴한 논리가 다 있나. 서로 알고 지내고 특강에 소개하면 철학이나 생각도 같은 건가? 그런데 아니다. 많은 사람이 오히려 반문을 한다. 보수는 보수끼리, 진보는 진보끼리 몰려다니는 세상 아니냐고. 그런데 그게 왜 증거가 안 되느냐고.

후보자에 관한 논란이 계속되는 동안 이 별것 아닌 것 같은 이야기가 가슴을 찔렀다.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의혹 등은 오히려 뒷전이었다. 이런 논법이 통할 정도로 끼리끼리의 배타적 진영 논리가 강하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다.

보수든 진보든 세상을 보는 혜안이나 미래를 이끌 계책을 가졌다면 또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신념이나 이해관계를 앞세운 채 ‘창조경제’니 ‘소득 주도 성장’이니 하며 남의 나라에서 하는 이야기나 복사해 쓰는 수준이다. 서로 듣고 배워도 시원치 않을 판에 이렇게 끼리끼리 폐쇄적이라니.

불현듯 1978년, 약 40년 전의 일이 생각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 A. Hayek)가 한국에 왔다. 그리고 당시 경제정책의 중심인 경제기획원 엘리트 관료들과 국책연구원 연구원들 앞에서 강연했다.

연사인 하이에크는 어떠한 형태의 국가 기획도 반대하는 사람, 그리고 청중은 바로 그 국가 기획의 중추로 스스로를 한국 경제의 건설자라 칭하는 엘리트들. ‘무슨 내용의 강연에 무슨 질문이 있었을까?’ 당시 대학원 석사과정 학생은 감히 가 볼 수 없는 이 강연이 너무나 궁금했다.

강연이 끝나고 나서 참석자 한 사람을 만났다. “화폐를 왜 국가가 독점적으로 발행해야 하느냐”, “여러분(국가 기획)이 없으면 한국 경제가 더 단단하게 발전할 수도 있다” 등 하이에크다운 강연을 했다고 했다. 질문도 좋았다고 했다. “한국과 같이 자원이 부족한 발전 초기의 국가는 다른 논리가 적용되어야 하지 않느냐?” 등.

가 보지는 못했지만 연사도 청중도 부러웠다. 언젠가 그런 연사가 되고 그런 청중이 되었으면 했다. 자신과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당당히 자신의 입장을 설파하는 연사, 그리고 그러한 연사를 존중하며 질문다운 질문을 하는 청중 말이다.

그 서슬 퍼런 유신독재 시절에도 이러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이게 뭔가. 강한 신념을 지닌 집단일수록 같은 생각을 하는 연사를 부른다. 강의와 강연을 위로와 안도, 즉 한 ‘패거리’로서의 세(勢)와 편견을 확인하는 수단 정도로 쓰는 것이다. 자신들의 생각과 조금만 어긋나도 “저런 사람 왜 불렀어”라고 하는 등 유신독재보다 더한 폐쇄성이 그 안에 있다.

연사도 마찬가지. 강연시장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잘 안다. 청중이 듣기 좋아하는 소리를 더욱 강하게 하며 청중의 기분을 맞춘다. 결국 여기도 끼리끼리, 저기도 끼리끼리, 청중도 연사도 끼리끼리의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그 골방에서 세상이 제대로 보이겠는가? “그래 맞아” 해 가며 서로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해 봐야 뭐가 되겠나. 눈을 맞추면 맞출수록, 손을 잡으면 잡을수록 그들의 눈과 머리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진다.

미래 학자 앨빈 토플러(A. Toffler)가 말했다. 오늘의 문맹은 글을 못 쓰고 못 읽는 게 아니라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 그 변화를 읽지 못한 채 ‘무용지식(obsoledge)’, 즉 이미 쓸모없게 된 지식이나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게 문맹이라고. 그리고 그 문맹은 많은 부분 잘못된 신념이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문화에서 온다고.

알고 지내면 생각도 같다는 해괴한 논법이 통하는 세상, 그런 세상 속에서 스스로 문맹이 되어 가는 보수와 진보를 본다. 그리고 이 기가 막히고 참담한 현실 너머 우리의 미래가 어두워지는 것을 본다. 그가 사퇴를 했건 말았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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