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하의 세종인사이드] “고통스러운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입력 2017-09-2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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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차장

콜롬비아 저널리스트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저서 ‘백 년 동안의 고독’은 35년이 흘렀지만, 다시 손이 가는 고전이다.

고향인 바나나 농장에서 실제 일어난 최악의 노동자 학살사건을 다룬 그의 소설은 기자 경험을 살려 중남미 역사의 현실성에 토착신화의 상상력을 결합한 ‘마술적 리얼리즘(magic realism)’을 표현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을 놓고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마술적 리얼리즘’은 믿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와 공존하고 있는 현상을 부각한다.

2014년 4월 17일 그는 숨을 거뒀지만, ‘마술적 리얼리즘’처럼 믿기 힘든 일은 그가 죽기 하루 전 우리에게도 일어났다. 사랑하는 우리의 아들·딸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세월호의 참극.

21일 4·16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추모사업 추진 근거인 조례가 공포된다. 이 조례는 단순한 자치법규가 아닌 생명·안전과 인권·정의에 관한 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251일이 지났지만,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과 감각은 여전히 무디다.

형용사인 ‘무디다’는 ‘느끼고 깨닫는 표현의 힘이 둔하거나 세련된 맛이 없고 투박하다’라는 뜻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칼이나 송곳 따위의 날이 날카롭지 못하다’이다. 바로 공정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린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사건 이후 반세기 만에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을 맞이했다. 산모·영유아 등이 사망하거나 폐질환에 걸린 가습기 살균제 비극은 사건 이후 4년이 지났어도 변화하지 않는 게 복지부동(伏地不動)의 풍조이다.

2011년 애경의 가습기 살균제 허위·과장 광고를 조사했던 공정위가 무혐의로 이듬해 결론을 내린 이후, 또다시 2016년 가습기 살균제 부당표시 사건 처리는 ‘무디다’의 극치를 보였다.

18일 국회 정무위원들의 질책이 쏟아진 이유도 이러한 맥락과 무관치 않다. 오죽했으면 야당과 더불어 여당까지 무뎌진 공정위의 ‘가습기 살균제 패싱’을 놓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질타했을까.

심의절차 종결은 사실상 무혐의 처분으로 보는 등 면죄부 의혹이 짙다. 해당 건은 형사처벌이 가능한 공소시효 5년이 경과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정위는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피해발생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연구조사가 나와야 위법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5년 4월부터 환경부가 인체에 위해하다고 밝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논리이다.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과의 해리 프랭크퍼트 교수가 써낸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라는 철학서가 있다. ‘왜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위험한가’라는 독특한 분석철학을 담고 있다.

저자는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참과 거짓의 논리 자체를 부정하고 진실을 호도하는 교활한 언어 행위를 ‘개소리’로 칭하고 있다.

김상조 위원장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약속했다. 여야의 동시다발적인 공세에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의 ‘먹물 발언’처럼, 자유로운 학교에서 지내는 소위 ‘먹물 시절’ 일이다.

오징어의 제철은 11월까지라고 한다. 신속한 재조사 등 사건 처리를 약속한 만큼, 먹물 뺀 제철 오징어를 먹을 수 있는 날이 그날이길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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