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말 합스부르크 왕가가 발원(發源)한 스위스 합스부르크 성(城) 인근 암브라스(Ambras) 성 미술관에 소장된 합스부르크 왕족 초상화와 조각상은 후세일수록 얼굴이 기형이다. 턱이 길고 뾰족하며 아랫입술은 비정상적으로 두껍다.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치아 부정교합으로 안면 비대칭이었으며, 정신과 신체 발육이 늦어 스페인의 카를 2세는 네 살에 말을, 여덟 살에 걸음을 시작했다. 왕족의 초상이니 궁정화가들의 ‘뽀샵’이 대단했을 텐데도 심각한 기형이다.
고귀한 신분의 왕족들이, 동화 속 공주와 왕자에 대한 상상을 무참히 파괴할 정도로, 불쌍할 만큼 기형으로 태어난 것은 근친결혼이 원인이다. 1273년부터 1918년 1차 대전의 결과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750년 가까이, 영국과 프랑스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럽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정치 안정, 왕권 세습, 세력 증강, 혈통 유지를 위해 근친결혼으로 얼기설기 얽혔다. 4촌간 결혼은 다반사(茶飯事)였다.
그러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혈족 간의 결합, 순혈주의(純血主義)로 가문의 영원한 번영과 존속을 꾀했던 합스부르크 황제들과 왕들의 희망은 초상화에서 확인되듯 추한 외모와 부진한 발육 등 선천성 기형 외에 생식력 저하, 유아 사망, 면역성 저하, 특정 암 발병, (이 모든 것을 종합한) 혈통의 조기 단절 같은 비참한 결과로 귀결됐다.
‘합스부르크 기형’은 뒤늦게 유럽의 다른 왕가들이 근친결혼을 중단하는 데 기여했다. 19세기 말 빅토리아 여왕 시대까지만 해도 순혈주의를 지키려던 영국 왕실은 여왕 사후 ‘귀천상혼(貴賤相婚, Morganatic Marriage)’으로 돌아섰다. 왕족은 왕족끼리만 결혼해야 한다는 전통이 왕족이 아닌 상대와도 결혼할 수 있게끔 바뀐 것이다. 왕세자인 찰스와 귀족인 다이애나도 이 원칙이 허물어졌기에 혼인이 가능했다. 찰스와 다이애나가 근친이었다면 그 사이의 두 왕자와 왕손이 정상적으로 생기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눈치 챈 분이 많겠지만, 오늘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순혈주의로는 개혁과, 개혁을 통한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널리 알려진 주장을 내 나름 다시 강조해 보기 위해서이다.
‘합스부르크 기형’이 보여주듯 ‘근친교배’, ‘순종끼리의 결합’은 기형과 왜곡, 퇴행은 물론 극단적인 경우에는 조기 사망을 가져왔다. 발전은 오히려 잡종교배, 다른 생각과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이나 조직이 융합됐을 때 이뤄졌다.
잡종교배가 인류적인 차원의 발전을 가져온 사례는 미국의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1952~ )이 2014년에 낸 ‘이노베이터(혁신가)’가 보여준다. 컴퓨터, IT의 발전 과정을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취재, 흥미진진하게 펼쳐 놓은 740쪽의 이 책에서 아이작슨은 “여러 사람, 여러 조직이 열린 마음으로 협력한 곳은 성공했고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혼자 움켜쥐고 있던 사람, 또 그 이득을 혼자 챙기려던 사람은 절대 성공에 이르지 못했다”고 기록했다.
또 ‘본인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외딴 곳에서 연구하고 천착(穿鑿)해야 했던 사람도 실패자의 반열에 올랐다’고 적었다.
그의 이런 생각은 2011년 그가 이 책보다 먼저 쓴 스티브 잡스 전기에도 나온다. 잡스가 실리콘밸리에 애플 본사를 새로 지을 때 “대학 캠퍼스처럼 우연한 만남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설계를 도입했다”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전공이 제각각인 대학생들이 우연히 만나 대화를 통해 새로운 꿈과 이상을 키우게 되는 것처럼 잡다한 사람들이 넓고 열린 곳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다 서로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발아(發芽)된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 기술, 새 디자인이 21세기 인류의 삶을 바꿨다는 것이다.
잡스는 30년 전인 1980년대,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기업이었던 제록스의 본사가 이런 설계였음을 기억해냈다.
우리 편과 내 사람만 강조하는 현 정부의 인사와 결과가 걱정스러운 몇몇 정책이 오늘 나에게 ‘합스부르크 기형’을 떠올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