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이란에 동시 공격을 퍼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핵 협상 딜레마’에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제72차 유엔총회에서 41분간 기조연설을 하며 상당 시간을 북한과 이란을 공격하는 데 할애했다. 트럼프는 “미국과 동맹국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로켓맨’이라고 표현하며 “‘로켓맨’은 자살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란을 향해서는 “불량 정권”이라며 “이란과의 핵협상은 미국이 맺은 최악의 편향적인 협정”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대선 때부터 이란 핵 협상을 “재앙”이라고 표현하며 폐기 의지를 내비쳤다.
뉴욕타임스(NYT)는 북한과 이란을 동시에 공격한 트럼프의 기조연설은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대북 특사였던 웬디 셔면 전 미 국무부 차관은 “트럼프가 이란과의 핵협상을 깨는 것은 신뢰를 포기한다는 의미”라며 “미국의 신뢰에 상처가 나면 북한의 핵 문제를 외교적인 해법으로 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이 북한과 핵 협상을 맺는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것이다. 이란은 2015년 7월 미국 등 주요 6개국과 핵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할 것을 약속했다. 핵협상에 따르면 이란은 2024년 초까지 탄도미사일 개발 제재를 받는다. 그 대가로 서방의 대이란 경제 제재가 풀렸다. 그런데 북한이 당장 핵 협상을 맺는다고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나 트럼프 이후에 정권을 잡는 미국 대통령이 협상을 깰 위험이 있다면 북한이 협상에 나설 이유가 사라지는 셈이라고 NYT는 진단했다. 앞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지난 18일 “미국의 핵 협상 파기는 북한을 포함한 외국과의 협상에서 좋지 않은 외교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를 포함한 미국 행정부 관료들은 완전히 반대 논리를 고수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즉 이란과의 핵 협상에서 북한이 ‘영구적인 협상은 없다’는 교훈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지난 19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란과 협상을 계속 유지한다면 세부 조항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기조연설 후 로하니 이란 대통령 역시 강경 발언으로 응수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20일 유엔총회 일반토의 기조연설에서 “미국이 핵 합의를 파기하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핵 합의가 ‘불량배 풋내기’에 의해 파기된다면 대단한 유감”이라고 말했다. 또 “이란이 먼저 합의를 파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도 자신의 트위터에 “트럼프의 연설은 21세기 유엔이 아닌 중세시대에 어울릴 법하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