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느라 너무 각박해져서 남의 이상한 점에 대해 일순간 벌컥 화를 내거나 물리친다. 나와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남에게는 물론 나 자신에게도 너무 과민하게 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요즘 자기 전 두 손을 가슴에 얹고 간단한 기도를 한 뒤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달자, 그래 괜찮아.” 새벽에 눈을 뜨고도 기도 다음에 이 예식을 치른다. 그러면 마음이 편하고 가벼워진다. 나를 용서하고 스스로 편한 언덕으로 데리고 가는 일은 행복을 만들어 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가 용서를 이야기할 때 가장 큰 장애가 되는 문제는 늘 ‘괜찮지 않은 것’ 때문이었다. 속이 좁아터져서 도저히 남을 용서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문제에도 “그만!”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하는 것도 만족할 수 없는, 너무 과한 욕심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출간된 ‘나는 괜찮아요’라는 책은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에서 수년 동안 근무한 물리치료사 박영현 씨가 들려주는 환자와 그 가족들 이야기이다. 환자들의 고통과 사연을 따뜻한 눈으로 소개한 이 에세이는 그들이 우리와 다른 사람이 아니며 특별히 선택을 받았거나 선택받지 못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잘 알게 해준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들의 인생에서 많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을 ‘다름’으로 바라보지 말고, 이상하게도 바라보지 말고 ‘그래그래, 괜찮아’라는 인간적 이해와 공감으로 서로 격려하며 살아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시대가 그러하다. 우리들 마음속에 이해와 사랑이 자랄 때 모든 인간사는 아름다움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인가 실수를 했다가도 누군가가, 아니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괜찮아”라고 해준다면 그것은 모든 근육이 이완되는 것과 같은 편안함과 더불어 “살았다”는 안도감을 갖게 해줄 것이다.
나는 “괜찮아”라는 말이 참 좋다. 무엇인가 푹 숨을 쉬게 하고 눈이 뜨이고 뭔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온몸에 퍼지는 것만 같다. 아니 희망보다 더 먼저 어떤 인간적인 따스함 덕분에 안으로는 울컥하지만 겉으로는 누군가가 내 옆에 사람이, 혹은 사랑이, 아니 혹은 위로가, 응원이 내 옆에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이들을 키울 때 이 말에 참 인색했다. 그것이 가장 후회스러운 점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누구에게라도, 그것이 참 난처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괜찮아”라고 말하며 어깨를 두드린다. 아주 가까운 친구처럼.
깃털처럼 가볍게 산다 해도 우리네 생은 그만큼 무겁기만 하니 더욱더 “괜찮아”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놀랍게도 늘 지나치게 늠름하고 강하게 살아서 ‘강철 같은 심장을 가졌나’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들 중에도 심성이 너무 연약하고 여려 돌아서서 혼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스스로 위로하며 일어서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사실 모두 다 연약하다. 그러니 서로 “괜찮아”라고 어깨를 두드리며 서로 힘을 불러일으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말을 따스하게 주고받아야 할 한가위 명절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