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미국과 중국의 통상 압력 속에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터널로 들어가고 있다.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에 따른 경제 보복은 계속되고 있고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 이어 한국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가능성도 예고했다. 힘을 앞세운 미국과 중국에 떠밀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위기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미국의 통상압력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한미 통상당국은 4일 2차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를 열어 한미 FTA 개정에 사실상 합의했다. 당초 우리 정부는 한미 FTA 개정 또는 재협상 요구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미국은 한미 FTA 개정을 이끌어낸 데 이어 세탁기까지 파상적 무역 제한 조치를 예고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이달 5일 한국산 세탁기가 자국 기업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며 첫 세이프가드 대상으로 지목했다. 삼성·LG전자의 미국 세탁기 수출액은 지난해 기준 10억 달러(1조 1460억 원) 규모에 달한다. 향후 철강업계와 태양광업계도 미국의 수입 규제 강화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오는 15일까지 의회에 제출하는 하반기 환율보고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무부는 ▲대미 무역수지 흑자(200억 달러 초과) ▲경상수지 흑자(GDP 대비 3% 초과) ▲환율시장 개입 여부(GDP 대비 순매수 비중 2% 초과) 등 세 가지를 기준으로 3개를 모두 충족하면 환율조작국, 3개 중 2개를 충족하면 관찰대상국으로 각각 지정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0월에 이어 지난 4월에도 중국과 일본, 대만, 독일, 스위스 등과 함께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됐다. 최근 강화되고 있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정책 기조가 환율보고서에도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연초 시작된 중국의 사드 보복도 현재진행형이다. 가장 눈에 띄게 피해를 본 분야는 중국인 관광객 의존도가 높았던 관광 분야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사드 보복이 시작된 지난 3월부터 7월 말까지 중국인 관광객 약 333만 명이 한국 관광을 포기한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기준 중국인 관광객 1인당 평균 지출액 1956달러를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연간 기준으로 손실액은 18조 1000억 원에 육박한다.
한국의 대중 수출의존도가 지난해 25%를 넘으면서 비관세 장벽으로 인한 수출산업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자동차부품 수출액 감소액만 연말까지 21억500만달러(약 2조 41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 밖에 디스플레이와 무선통신 기기에서도 간접적으로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IBK경제연구소와 신한금융투자는 사드 보복이 우리 경제에 미칠 경제적 손실 규모가 150억 달러(약 17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산업은행은 여기에 북한 문제를 놓고 한중 관계가 더욱 악화되면 약 22조 원에 달하는 추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0일 만료되는 한중 통화스와프 계약도 제때 연장하지 못했다. 한중 통화스와프는 2011년 첫 협정을 맺었고 2014년 3년 연장됐다. 통화스와프 규모는 3600억 위안(약 560억 달러)으로 한국의 전체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액의 46%를 차지한다. 통화스와프는 계약 체결국끼리 특정한 날짜나 기간을 정해 기간 내에 미리 약속한 환율에 따라 서로 통화를 교환하는 외환 거래를 뜻한다. 외화 유동성 확보에 필수적이다.
국내에서도 지지부진한 경기회복과 1999년 이후 최악을 기록하고 있는 청년실업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2분기 경제성장률은 2.7%(전년동기대비)로 1분기 2.9%보다 감소했다.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미국이 1.4%에서 3.1%로, 일본이 1.0%에서 2.5%로 성장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일부터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G20 및 IMF/WB 연차총회에서 3대 글로벌 신용평가사, 주요국 재무장관, 국제금융계 인사 등과 만나 우리 경제상황과 대응능력에 대해 설명하는 등 대외리스크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