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키워드] ‘밀레니엄’과 스티그 라르손-김광석의 유족이 일깨워준 ‘소설과 작가’

입력 2017-10-1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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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정의로운 기자이자 소설가였던 스티그 라르손(1954~2004)은 유작(遺作) 소설 ‘밀레니엄’으로 엄청난 유산과 함께 흥밋거리가 많은 싸움을 남겼다. 많은 히트곡과 저작권료를 남긴 우리나라 가수 김광석처럼.

라르손은 스웨덴 정치·경제계의 부정·부패는 물론 네오나치즘 따위 극우세력, 인종차별, 여성혐오 등을 1983년 시작한 기자생활 내내 거침없이 비판하고 고발해온 드문 기자였다. 1995년에는 잡지를 창간, 사회 비판의 칼날을 더더욱 날카롭고 묵직하게 휘두르는 한편 ‘밀레니엄 시리즈’ 10부작을 구상, 3부까지 집필한 후 만 50세이던 2004년 11월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우리나라의 한 신문은 밀레니엄 시리즈를 ‘거악에 의한 부정·부패를 파헤치는 기자와 스스로 미친년이라고 부르는 천재 해커가 추적한 은폐된 악의 세계! 파시즘·젠더폭력·국가폭력을 건드렸고 2010년도 노벨상 수상작가인 바르가스 요사가 불멸의 문학이라고 한 소설!’로 소개했다. ‘지금까지 52개국에서 9000만 부 이상 팔렸다’는 문구가 이어진다(인세를 권당 1000원씩 잡아도 900억 원이다!).

이 소개가 나오기 훨씬 전에 3부 6권으로 된 번역본을 모두 읽고는 주인공 기자-작가의 분신임이 분명한-가 보여준 정의감과 윤리의식, 끈기와 용기가 바탕이 된 뛰어난 취재력 등 온갖 기자적인 미덕에 깊은 감동을 받은 나는 후배들에게 이 책을 사주면서 영화는 스웨덴 것과 할리우드 것이 있는데, 스웨덴 것이 훨씬 좋으니 다운로드해서라도 보라며 소개했다.

책은 그가 죽은 지 6개월 뒤인 2015년 5월에 나왔다. 저작권료는 당연히 그의 아내이자 평생 동지였던 에바 가브리엘손의 차지가 되어야 마땅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라르손의 아버지와 동생이 저작권을 포함한 모든 유산 상속 자격을 주장하면서 시작된 법률 다툼에서 그녀가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라르손(오른쪽)과 가브리엘손.
▲젊은 날의 라르손(오른쪽)과 가브리엘손.

18세에 한 살 아래인 라르손을 만나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32년간 사실혼 관계였으며, 라르손이 소설에 자신의 아이디어와 경험, 충고도 많이 녹여 넣었다고 주장했던 그녀를 스웨덴의 법률은 그의 법적 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편들어 주지 않았다. 평생 적대세력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던 라르손은 자신 못지않게 치열한 사회운동가인 가브리엘손을 보호하기 위해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브리엘손은 스웨덴 사법제도에 대들었으나 법은 법, 결과를 바꿀 수 없었다. 그녀는 또 “‘시아버지’는 라르손이 돌을 맞을 무렵 키울 능력이 안 된다며 처가에 맡겨 놓고 찾아보지 않았고, 7년 뒤 아들을 찾아온 후에도 제대로 돌보지 않은 파렴치한 아버지였으며, 라르손도 그를 진정한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면서 어두운 가족사를 2011년 ‘밀레니엄, 스티그와 나’라는 책에 담았다.

가브리엘손이 정색을 하며 자신을 헐뜯자 시아버지는 그녀가 살고 있던 라르손 명의의 아파트까지 빼앗으려 했다. 라르손의 동생은 한술 더 떠 “350만 달러(약 35억 원)를 제안했으나 그녀가 거부했다. 그녀가 더 많이 차지하려면 우리 아버지와 법적으로 결혼해 아버지가 죽은 후 형의 재산을 물려받으면 된다”는 ‘막장’ 제안을 내놓았다.

라르손 유족들의 길고 추한 다툼은 연휴 직전에 ‘밀레니엄 4부’ 번역본이 나왔다는 소식과, 연휴 중에도 계속된 김광석 부인에 대한 보도로 인해 내 뇌리에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김광석의 부인이 한 인터뷰에서 남긴 “이 모든 게 돈 때문”이라는 말이 오래 남아 있다. 그녀는 시집 식구들은 물론 자신을 살인범으로 몰아가고 있는 이(李) 무슨 기자도 돈 때문에 이러고 있다고 원망했다. 죽기 직전까지 정의를 부르짖은 라르손의 유족은 불의한 싸움을 벌이고 있으며, 아름다운 노랫말과 선율로 사랑을 호소한 김광석의 유족은 증오로 대치하고 있는 이 아이러니! 이 모든 게 돈 때문이라니! 하지만 그것도 인생이려니!

밀레니엄 4부는 출판사와 아버지 측이 선정한 다른 작가가 원작의 캐릭터를 그대로 이어받아 썼다. 그 역시 기자 출신으로 필력을 인정받은 뛰어난 작가이지만, 가브리엘손은 정통성과 연속성, 그리고 가치를 무시했다. 그녀는 라르손의 아버지, 동생이 죽은 라르손을 출판사에 팔아먹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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