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친화적 구조조정을 정착시키기 전 일본의 ‘관민펀드(산업재생기구)’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내 사모펀드의 규모가 빠르게 성장했지만 막대한 자금과 정상화까지 장기간이 소요되는 중후장대 산업의 구조조정에서 PEF 역할은 아직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현 연구위원은 지난해 발표한 ‘기업구조조정과 정책금융 역할에 관한 소고’ 자료를 통해 “일본 정부는 금융 중심의 구조조정이 한계에 봉착했을 때 민간 전문가를 활용하는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일본도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 오랜 기간 구조조정을 진행해왔다. 2003년 4월 일본 정부는 부실채권 처리와 기업·산업재생이라는 두 가지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산업재생기구를 설립했다. 산업재생기구는 일본 예금보험기구를 주요 주주로 하는 한시적 주식회사(일몰조항), 일종의 펀드다. 펀드 자금은 예금보험기구가 497억5700만 엔, 농림중앙금고가 7억5000만 엔을 출자했다.
금융위원회가 주도한 ‘연합자산관리(유암코)’와 비슷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산업재생기구의 구성원이다. 일본은 자금을 각출한 은행과의 이해상충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임직원을 은행에서 파견받지 않고 투자은행(IB), 법률사무소, 회계법인, 민간 연구소 등에서 공개 채용을 했다. 유암코는 구조조정 1호 기업을 선정할 때 출자 은행들의 심사역들이 함께 했다.
산업재생기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재생지원과 채권매입 결정이다. 이 업무는 산업재생위원회가 담당했다. 위원회는 비상임이사 6명과 집행위원으로 구성됐다. 정부는 민간 전문성과 경험을 활용하면서도 기구의 공공성을 고려해 업무범위를 임원 선임 승인, 예산 및 자금조달 인가, 산업재생기구의 차입에 대한 10조 엔 보증으로 한정했다.
그 결과 산업재생기구는 중립적 입장에서 이해당사자 조정 기능과 위험부담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산업재생기구 설립 당시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자의 부재, 재생전문가와 구조조정 시장 부재 등 시장 형성 초기 당계에서 발생한 시장 실패를 보완했다.
현 위원은 “급변하는 환경에서 정부 실패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위험자본을 제공하고 민간 전문성과 자금을 활용하는 정부계 펀드나 관민펀드가 구조조정에 바람직하다”며 “이를 통해 구조조정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하면 사모펀드와 투자은행 중심의 시장친화적 구조조정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