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당시의 경제 통계를 살펴보면, 한국의 과거와 현재가 어쩜 그렇게 다를 수 있는지 놀라게 된다. 1997년 10월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05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2017년 8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3848억 달러로 10배 이상 늘어났다. 1997년에는 만성적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2017년 1~8월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이미 496억 달러에 이른다. 특히 9월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138억 달러에 달했기에 올해에도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1000억 달러에 육박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0년 주기 경제위기설’을 근거로, 한국경제가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사람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1997년 외환위기에 이어,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으니 2017년도 위험하다는 게 핵심적인 논리인 것 같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2013년 마켓워치의 칼럼이 문득 떠오른다. 세계적 투자 사이트인 마켓워치의 한 칼럼니스트는 ‘1929년 대공황의 유령이 다시 출현했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2013년 미국 주식시장이 1929년처럼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노력을 펼친 결과 주식시장이 회복되기는 했지만, 1928년처럼 연준의 금리인상이 시작되면 주식시장이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특히 1928~1929년과 2012~2013년 다우지수의 흐름을 비교한 ‘그래프’의 형태가 너무 비슷했던 것이 공포를 키웠다.
그 후 4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2013년 말 1만6577포인트였던 미국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2017년 9월 말 기준 2만2405포인트에 도달, 같은 기간 상승률이 무려 35.2%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투자자가 마켓워치 칼럼니스트의 주장에 혹해 주식을 전량 매도했다면 그는 좋은 투자의 기회를 날리고 말았을 것이다.
마켓워치 칼럼니스트의 전망이 틀린 이유는 명확하다. 1928~1929년의 주가 패턴이 2013년과 비슷하다는 점만 바라봤을 뿐, 경제 여건과 기업 실적 등에 대해서는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논리는 ‘10년 주기 경제위기설’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10년 주기의 위기 가능성을 경고하는 사람들은 항상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2007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로 든다. 그런데 1987년 이야기는 좀처럼 하지 않는다. 참고로 1987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12.5%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1977년 경제성장률은 12.3%였으며, 1967년엔 9.1%, 1957년은 9.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1957년 이후 10년 단위로 성장률을 살펴보면 네 번은 고성장을 기록했고, 두 번은 성장률이 부진했다. 그런데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얼마 전 통계청이 한국의 경기순환을 분류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경제는 대략 3분의 2는 호황을 누리지만, 나머지 3분의 1의 시간은 불황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결국 10년마다 경제가 위기에 처한다는 주장은 장기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크게 신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밀림이나 초원에서 손쉽게 포식자의 징후를 찾아낸 사람일수록 더 유리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현대인들도 패턴 찾기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패턴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수많은 참가자들이 더 높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 노력하는 자본시장에서는 패턴을 찾는 노력뿐만 아니라, 경기여건은 물론 기업 실적의 변화 같은 다양한 변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