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정치를 바꿔야 나라가 산다]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 한목소리… 공통분모부터 찾아라

입력 2017-10-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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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개정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화두로 떠올랐던 개헌 논의가 국회를 중심으로 다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여야 정치권 모두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한다는 대선 공약에 공감했다. 다만 개헌 방향을 놓고서는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제왕적 대통제’를 극복하자는 데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세부사항에는 시각이 다른 상황이다. 개헌 논의 자체가 자칫 여야의 정쟁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1948년 헌법을 제정한 이후 헌법을 9차례 개정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통령 직선제 도입(1차) △이승만 대통령 3선을 위한 개헌(2차) △4·19 혁명 후 내각책임제로 전환(3차) △반민주행위자처벌에 관한 부칙조항 삽입(4차) △5·16쿠데타 발생 후 대통령제로 전환(5차) △박정희 대통령 3선을 위한 목적으로 단행·5차 개헌 때 3선을 금지한 조항 철폐·대통령의 재임을 3기까지 가능하게 함(6차) △유신체제 전환을 위한 개헌(7차) △신군부 집권에 따른 전두환 정권으로의 전환(8차) △대통령 직선제(9차) 등이다.

◇시대적 요구에 따른 대한민국 10차 개헌 시도 = 지금의 대통령 직선제는 민주화 시대를 열었던 1987년 6월 항쟁의 6·29선언으로 인해 나온 제도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을 직선제로 선출하고 임기를 5년 단임으로 한다. 헌법은 전문(前文)을 비롯해 총강(總綱), 국민의 권리와 의무, 국회, 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 지방자치, 경제, 헌법개정 등 10장으로 나뉜 본문(本文) 130조 및 부칙(附則) 6조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9차 개헌 이후 30년 동안 시대적 변화와 다양한 요구 속에 수차례 개헌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그러다가 지난 조기 대선을 기점으로 10차 개헌 논의에 불이 붙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부터 임기 내 개헌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개헌 논의의 불씨를 되살렸다. 문 대통령은 “국회의 개헌특위를 통해서 하든, 대통령이 별도의 정부 산하 개헌특위를 통해서 하든, 내년 지방선거 시기에 개헌하겠다는 것은 틀림없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재차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여야 모두 개헌 자체에는 한뜻을 모으고 있다. 2018년 6월13일 치러지는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병행하는 것에 대한 물리적 제약은 없는 상태다.

10차 개헌은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개헌특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요 의제는 크게 △권력구조 개편 문제 △국민기본권 강화 △지방분권 선거구제 개편 △정부 형태 등이다. 이번에도 개헌 논의는 권력구조 개편 쪽으로 기울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국정농단 사태 등 적폐를 청산하고자 대통령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4년 중임제는 대통령제를 중심으로 한다. 다만 임기를 1년 줄이고 재선할 수 있다. 안정감 있는 국정운영과 중간평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레임덕을 우려해 임기 초부터 포퓰리즘 정책이 난무할 수 있다는 부작용이 있다.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은 외교·국방 등 외치를, 국무총리는 경제·사회 등 내치를 전담하는 방식으로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절충형이다. 행정부와 입법부 간 견제와 균형을 기대할 수 있지만, 내치와 외치를 엄격히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력구조, 4년 중임제 vs 이원집정부제… 중앙·지방 분권도 화두 = 이처럼 개헌과 관련해 다양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권력구조의 ‘분권·협치’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최근 선학태 전 전남대학교 교수가 발표한 보고서 ‘권력구조 개헌과 비례대표제’에 따르면 수평적 권력분점의 헌법적 제도화가 잘 정착된다 하더라도 비례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권력구조의 협치 기제는 작동하기 어렵다. 선거제도가 ‘주춧돌’이고 정당체제가 ‘기둥’이라면 권력구조는 ‘지붕’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지붕 하나 바꿔서는 변하는 게 없다는 것이다. 선 교수는 “권력구조의 분권-협치는 비례제의 종속변수”라고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연방제와 양원제의 강력한 견제를 받는 수평적·수직적 권력분점형 대통령제이지만 승자독식 단순다수 선거제로 인해 협치 기제로 작동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입법이 지연되는 일이 다반사이고, 2013년 연방정부 셧다운처럼 국정이 마비되는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선 교수는 영국과 독일의 사례도 들었다. 영국은 내각제이긴 하지만 소선거구제로 보수와 노동당이라는 거대 양당체제가 고착화하면서 집권당·총리의 권력독점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라고 봤다. 반면 비례제와 소선거구제를 결합한 연동형 비례제를 택한 독일은 어느 정당도 과반의석을 획득할 수 없어 정책·입법연합-정부연합의 내각제가 강제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내각제가 권력분산형 정부제도라는 인식은 오류”라고 했다. 그러면서 “분권과 협치의 관점에서 볼 때 순수 대통령제, 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제 등 특정 권력구조의 택일적 개헌 논쟁은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이라고 꼬집었다.

권력구조 개편 다음으로 논의되는 건 국가분권 문제다. 대통령 권한인 중앙정부 권한을 수도권과 지방으로 분산해 권력집중 현상을 방지하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중앙집권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입법권과 재정권 등에서 중앙과 지방의 권한을 새롭게 배분하자는 주장이다. 재정분권과 관련해서는 지방소비세율 인상과 지방소득세 규모 확대를 통해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현행 8 대 2에서 7 대 3을 거쳐 6 대 4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중앙정부가 가진 인사와 재정, 조직 등 권한도 지속적으로 지방으로 이양해 32% 수준인 지방자치단체 사무비율을 40%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밖에도 개헌특위는 예산법률주의 도입, 경제민주화 규정 강화, 토지공개념 신설, 헌법 전문 내 복지·분권국가 등에 대해서도 논의 중이다. 기본권과 관련해서는 5·18민주화운동 및 6·10항쟁 등 역사적 사실 추가 여부 등이 쟁점이다. 특히 동성애 문제가 ‘뜨거운 감자’다. 헌법상 ‘양성 평등’을 ‘성평등’으로 바꿔 개정하자는 의견이 나온 뒤로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동성애 관련 발언을 한 의원들은 밤새도록 문자 폭탄에 시달리고 있다. 그만큼 개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개헌특위와 전국 16개 광역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자 지난달 19일까지 총 여섯 차례의 ‘개헌 국민대토론회’를 진행했다. 개헌특위에 따르면 지역별 토론회에서는 헌법 전문에 관한 사안부터 시작해 정당 및 선거제도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또 개헌 분야별 토론회와 선 개헌안, 후 토론회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종합해 보면 그동안 토론회에서는 주로 국민이 더 참여할 기회와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개헌특위는 지난달 20일 국민대토론회 진행 경과를 공유하면서 이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개헌특위 소속 변재일 의원은 “토론자들의 발표 내용은 진짜 깊은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이라 아주 좋았다”면서도 “사실상 토론이라는 게 전체 참가자의 의견을 수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변 의원은 “특정 주장만 끝없이 되풀이하면서 결과적으로 그들이 말하려는 건 개헌을 막기 위함이라는 말도 있다”며 “토론 시간이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정해졌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끝내려고 하면 ‘왜 끝까지 안 하느냐’거나 ‘왜 빨리 안 끝내느냐’는 반응이 나오는데,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은 “개헌 논의가 가면 갈수록 의견이 모이는 게 아니라 평행선으로 가는 것 같다”면서 “개헌 대국민 캠페인을 홍보한다고 하는데 과연 무엇을 홍보할지 걱정이고, 도저히 의견이 모이지 않는 부분은 개헌 의제에서 빼거나 합의하는 것으로 결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특위위원들은 개헌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게 국민 의견 수렴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

◇권력 ‘분권·협치’에는 공감, 공론화 과정은 산 넘어 산… = 개헌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높은 편이다. 최근 정세균 국회의장실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발표한 개헌 여론조사에 따르면 개헌 찬성은 75.4%, 반대는 14.5%였다. 국민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이 개헌에 찬성하고 있다. 찬성 응답자 가운데 ‘헌법을 개정한 지 30년이 지나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라는 응답이 41.9%로 1위였다. 이어 ‘국민이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 확대’가 27.9%, ‘대통령 권한 분산 또는 견제’가 19.1%로 뒤를 이었다. 또 전체 개헌찬성 응답자 가운데 ‘개헌이 국민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비율이 72.8%로 나타났다.

그러나 개헌특위의 활동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전국 순회 토론회를 여는 등 나름 국민 참여를 강조하고 있지만 ‘국민 없는 개헌’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여전히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개헌특위 소속 한 의원은 최근 기자와 만나 “10월까지는 국회가 열심히 본분을 다하고 11월, 12월, 1월쯤 되면 국민도 관심을 두게 될 것”이라며 “이후 2월에 개헌안을 발의해 지방선거 날 개헌 투표까지 순차적으로 잘 진행될 거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개헌 투표율 50%는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다”며 “총선은 50% 이상이 나오지만 지방선거는 50%를 안 넘는 일도 있어서 제대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좌초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공론화 과정을 만드는 자체에도 험로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현재 특위에서 공론화 방법을 논의하고 있지만, 의견이 제각각이라 하나의 안으로 매듭짓지 못하는 상황이다. 개헌 방향에 따라 가까이는 지방선거, 멀리는 총선과 대선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각 당의 특위위원들은 개헌이라는 큰 틀에는 동의하고 있지만 각자의 셈법이 달라 갈등을 보이고 있다. 정쟁으로 비치는 것을 우려해 표면화하는 것은 경계하는 분위기다.

한 헌법학자는 이투데이와의 통화에서 부분 개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국민은 국민투표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개정사항에 대해서도 ‘울며겨자 먹기’로 찬성하게 된다”며 “자신이 원하는 개헌사항이 일부 포함돼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부분을 거부하기 위해 개헌안 전부를 반대해야 한다”고 부분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정부 형태 개헌안은 반대하고, 사법개혁 개헌안은 찬성하고, 국민소환 개헌안은 찬성하고, 국민발안 개헌안은 반대하는 등 개개 개헌안에 대해 개별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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