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시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한국 정치

입력 2017-10-2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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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정치세력이 지금처럼 위축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작년 4·13 총선에서 그 이전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한 참패를 당했다.

물론 2004년의 17대 총선 때 당시의 한나라당이 신생 열린우리당에 큰 의석 차로 패한 적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그때는 야당이었다는 핑계라도 있었다.

20대 총선은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180석’을 운위하며 ‘절대강자’로 자만하던 집권당으로서 치른 선거였다. 상대는 당 내분으로 분당 사태까지 빚으며 기진맥진한 것같이 보이던 더불어민주당이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단지 1석 차이긴 했지만, 집권 보수정당이 진보야당에 원내 제1당의 지위를 빼앗긴 것은 처음이었다.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간 국민의당 38석까지 감안하면 말 그대로 참패였다.

패인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분명했다. 당 내분과 공천 파동이었다. 그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당을 떠나는 것으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책임지기를 거부했고 친박계는 되레 당권 탈환을 시도, 8·9 전당대회에서 지도부를 석권했다. ‘배신의 정치’ 파문 이래 골이 깊어지던 친박-비박 간의 갈등과 대립 양상은 회복불능 상태로 악화하면서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극단적인 사태를 초래했다.

대선에서 홍준표 당시 후보가 24%의 득표로 2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당이 다시 한 덩어리가 되어 재건을 서두를 명분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친박-비박계의 대립은 바른정당이 분당해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해소되기는커녕 더 격화했다. 홍 대표와 서청원·최경환 의원 간의 처절하다 할 만큼 치졸한 싸움이 바로 그 같은 당내 구조에서 비롯됐다.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역사에 편입된다. 반면 정당은 미래를 먹고사는 집단이다. 과거형이 될 사람이 미래형의 집단을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된다. 당원인 대통령은 차기 리더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줄 정치적인 의무를 지고 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인색했고, 친박계는 해가 이미 졌는데도 그 그늘(그러니까 친박계라는 집단)에 안주하려 했다.

과거의 비박-친박 대립이 이제는 당권파-구친박(친박을 자처하는 소속 의원들이 드물 것이므로)의 대결로 계속되고 있다. 당 중앙윤리위원회가 20일 박 전 대통령과 서·최 두 의원에 대해 ‘탈당권유’ 징계를 결의하면서 홍 대표와 서 의원 사이의 싸움은 ‘저급 언어의 경연’이 됐다. 서 의원이 홍 대표의 ‘고 성완종 회장 돈 1억 원 수수 혐의’와 관련된 약점(이라고 추측되는)을 쥐고 압박을 가하자 홍 대표는 노욕, 노추(老醜), 폐수, 사리사욕, 준동(蠢動) 등의 험한 용어로 반격을 가했다. ‘과거 정치자금 사건으로 실형선고를 받아 감옥에 있을 때 감형·사면을 도와준’ 인연까지 거론했다.

당사자들로서는 공히 절박한 사정이 있겠지만 대의를 위한 자기희생은커녕 양보조차 안 하겠다고 한다. 지금의 자유한국당 내분을 보면서 확언할 수 있는 것은 보수정당의 재기는 요원하다는 사실이다. 아직 멀었다. 아니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아무도 양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민심 이반은 가속화한다.

“이튼스쿨을 가보라. 교정이 바로 무덤이다. 나라를 위해 의무를 다하다 죽은 졸업생들의 시신이 그 교정에 묻혀 있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이튼스쿨 졸업생이 비공식 기록으로 5000명이라니, 기가 막히지 않은가. 이튼스쿨 졸업생이라야 한 해 고작 250명 정도. 그렇다면 20년분이 몽땅 나라를 위해 죽어 주었다는 소리이다. (중략) 그래서 영국은 지난 300년 동안 전쟁에서 한 번도 져 본 일이 없다.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내 나라의 장래가 백척간두에 있을 때,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먼저 나가 ‘의무를 다한다. 그리고 죽는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때문이다.”(송복, ‘특혜와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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