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하의 세종인사이드] 윤종신이 부릅니다. ‘좋니’

입력 2017-10-2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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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차장

“저한테 많이 묻습니다. ‘좋니?’”

요즘 아이들에게는 개그맨 아저씨로 통할 법한 윤종신이 무대에서 털어놓는 말이다. 한창 때인 1990년대 방송 차트에서도 1등을 못 해 봤다는 그의 너털웃음은 49세에 ‘음원 강자’가 됐다.

죄다 비슷한 노랫말과 춤·얼굴로 꾸며진 아이돌 세상을 무너뜨린 ‘아재’의 인생곡은 거부할 수 없는 시류(時流)가 된 셈이다. 한창때 이별의 아픔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눌러왔던 시련의 ‘울꺽거림’을 느끼게 한다.

곡을 듣고 있자면 이래저래 고달픈 우리네 삶에 ‘추억앓이’가 묻어 있다. 무심코 밤하늘이라도 바라보면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올 것도 같다.

인생론을 쓴 철학자 중에 삶의 새로운 의미를 꿈꾸게 한 헤겔이 있다. 헤겔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청년 헤겔이 가졌던 ‘삶의 이상’을 안줏거리 삼아 말하곤 한다. 자유정신의 의기 투합을 위해 ‘자유의 나무’를 식수한 그의 일화는 지금껏 비슷한 유형의 메타포로 전해져 왔다.

계란노른자를 띄우던 찻집에 앉아 ‘영웅본색’도 울고 갈 추억놀이 뒤편에는 성냥개비를 입에 물곤 사회비판과 변혁을 들먹이던 여운을 기억한다. 마르크스를 운운하던 억압 시대, 삶과 죽음의 담론을 고민하며 삶의 통합을 부르짖던 소위 ‘쌍팔년도’ 시대 얘기이다.

고도성장을 이끌어낸 베이비부머 세대에 의지하면서도 희생양임을 주장하던 ‘88만 원’ 세대와 지금의 3포·7포 세대까지 ‘대한민국에서 20대로 산다는 것’은 힘에 부친다. 천편일률적인 타령가를 울부짖지 않고서는 곱씹을 수 없을 것이다.

까까머리이던 1990년, 윤종신의 첫 데뷔곡을 기억한다. ‘텅 빈 거리에서’는 19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이면 다 아는 곡이다. 이들은 고용 불안이 심한 2000년대의 20대 청춘을 앞두고 경제적·정신적인 독립이 어려운 고난의 시기를 경험했다.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나름 재미와 낭만이 풍만했던 시대였다. 물론 어렵사리 취업에 골인하고도 경제 보릿고개의 타격은 컸다.

하지만 어려운 경기에도 결혼율과 출산율 따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황금돼지해’라는 속설에 속은 선배들은 어느덧 중년 가장의 무게를 경험하고 있다. 600년에 한 번 온다는 황금돼지해인 10년 전은 사랑과 돈의 손익계산서를 말해 주는 ‘사랑의 경제학’이 인기를 끌던 때이다. 1990년대 감수성에 사로잡힌 빈털터리 사회 초년병에게는 사랑과 돈의 묘한 연결고리가 주된 관심사였다.

독일 경제 전문 기자로 활약했던 독일 포르츠하임 대학교 하노 베크(Hanno Beck) 교수는 ‘사랑과 돈에 관한 유쾌한 보고서’를 통해 연애, 결혼, 이혼 문제를 투자·효용·경제가치 면에서 설명했다. 이 중 ‘사랑이 떠난 자리에는 늘 눈물과 부채만 남는다’는 얘기는 공감하는 바가 컸다.

‘낭만과 로맨스’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남녀관계의 실리에서는 재정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남녀관계에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골칫거리가 사랑 그리고 경제력이다.

아버지 지갑에서 몰래 돈을 훔쳐 본 이들은 알 것이다. 요즘 취준생들은 연애를 사치로 부른다. 놀고먹어도 취업만 잘 했다던 선배들 세대보다 더 악한 구조가 됐다.

‘억울한가 봐. 나만 힘든 것 같아… 나만 무너진 건가’라는 노랫말을 듣고 있으면 가슴이 저려온다. 뻔한 애정 타령임에도 요즘 청년 실업에 빗대면, 빈곤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도 같다. ‘아프다 행복해 줘’ 우린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끝날 무렵 케인스 경제학의 오류를 깨달았다. 또다시 실업률은 최악을 경신하고 있다.

아프다. 소득주도 성장론이던 혁신 성장이든 ‘J노믹스’로 이젠 행복해질 수 있을까.

견고한 세상을 건드린 자들에게 묻고 싶다. '좋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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