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 손편지] 여배우들의 손톱

입력 2017-11-0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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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세상을 떠난 마광수 교수는 수필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에 여성의 길고 긴 손톱을 보면 전율과 긴장을 느낀다고 적고 있다. 1988년 당시 서울 올림픽에 출전했던 미국의 여자 육상 대표선수 그리피스 조이너스의 휘황찬란하고 현란한 장식의 손톱을 보면서 성적 흥분을 느꼈다는 기록도 남긴 바 있다.

하기야 옛날부터 여성의 길고 긴 손톱은 노동에서 배제된 상류층의 상징 아니면 상류층에 기생하는 여성의 징표 아니었던가. 그러고 보면 나의 전생(?)은 상류층은 아니었나 보다. 지금도 깔끔하게 다듬어진 길고 긴 여성의 손톱을 보면 왠지 마음이 불편해지니 말이다.

한데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여성의 손톱은 따로 있다. 언제부터인지 확실치는 않은데, 영화를 보는 동안 여배우의 손톱을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 과정에서 ‘옥에 티’라 하기엔 석연치 않은 여주인공의 무감각 내지 감독의 태만함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죽어가는 괴뢰군(당시 영화의 호칭에 따르면) 병사의 고개를 받쳐 든 주인공의 모습을 카메라가 훑고 지나가는데, 그녀의 잘 다듬어진 깨끗한 손톱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 울긋불긋한 매니큐어는 바르지 않았지만 무색의 에나멜을 발랐던 모양이다. 그래도 전쟁통인데 아무리 영화 속이라지만 안일했다는 생각에 그 여배우에 대한 팬심(fan心)을 접어버렸다.

얼마 전엔 고속버스를 타고 가던 중 종편에서 방영 중인 사극(비슷한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이때도 공주의 모습을 비추는데 이번엔 연한 분홍색 매니큐어를 바른 여배우의 손톱이 눈에 띄었다. 조선시대 궁중에선 매니큐어에 버금가는 무언가를 발랐는지 알 길은 없지만, 아무래도 눈에 거슬리는 장면인 것만은 분명했다.

영화의 완성도는 주연 배우의 연기만으로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조연 배우들의 연기나 무명 배우들의 의상 등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았을 때 비로소 주연 배우의 연기가 빛을 발하고 영화의 완성도도 높아짐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눈에 잘 띄지 않을 것 같은 디테일이 중요하다는 방증일 게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주연을 맡았던 조니 뎁은 영화 속에서 뭉텅뭉텅 썩은 이를 드러내며 으스스하게 웃고, 손톱 끝엔 꼬질꼬질한 때가 잔뜩 끼여 있는 모습으로 나온다. 그 정도는 영화 관객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임을 온몸으로 보여주면서 말이다.

얼마 전 철 지난 영화잡지를 들춰 보는데 영화배우 배두나와 인터뷰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영화 ‘도희야’ 촬영을 막 끝낸 그녀에게 기자가 물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배두나의 답은 “손톱에 다시 매니큐어를 칠하고 싶다”였다. 영화에서 배두나는 자신도 상처를 안은 채 좌천된 파출소장으로서, 친엄마가 도망간 후 의붓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학대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도희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역할이었다 한다. 영화 촬영 내내 영화 속 주인공으로 살아온 여배우다움이 느껴졌다. ‘도희야’가 아시안필름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시상식의 계절이 다가오는 요즈음, 남녀 불문하고 자신의 손톱까지 세심히 챙기는 주인공들이 시상대에 서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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