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오토 인사이드] ‘1세대 스포티지’ , 美 포드 아이디어였다?

입력 2017-11-0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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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자동차 야사(野史) ① 기아산업 ‘스포티지’

▲기아산업 1세대 스포티지는 획기적인 콘셉트를 앞세워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기준으로 이처럼 작은 사이즈 SUV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기아산업 1세대 스포티지는 획기적인 콘셉트를 앞세워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기준으로 이처럼 작은 사이즈 SUV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1985년대 중반, 공업 합리화 조치가 해제됐습니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 군사정권이 등장하면서 기업은 철저한 통제 아래 놓이게 됐지요. 자동차 산업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특화 전략을 핑계로 현대차는 소형차 생산을, 대우(당시 새한)차는 중형차 생산을 전담하게 됩니다. 기아산업은 상용차 권한만 주어졌고, 동아차는 특장차 전담이 됐습니다. 이들은 오늘날 현대차와 한국GM, 기아차, 쌍용차로 각각 변모하게 됐지요.

공업 합리화 조치 해제 이후 승용차 시장은 현대차와 대우차, 기아산업의 3파전으로 구도가 짜였습니다. 이때가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근대적 기반이 갖춰지기 시작한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영겁의 시대를 지나오며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는 파란만장한 시대를 겪었습니다. 이 가운데 흔히 알려지지 않았던, 민간 기록만으로 전해지는 소소한 야사(野史)들을 모았습니다. 총 8회에 걸쳐 게재하고, 정리는 본지 자동차 전문 김준형 기자가 맡을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1990년대 자동차 시장은 ‘3파전’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쓰였다. 정부 규제 탓에 뒤늦게 소형차 시장에 뛰어든 기아산업이 본격적인 경쟁구도를 갖추기 시작한 때였다. 당시 국산차 시장은 현대차와 대우차, 기아산업이 치열한 판매 경쟁을 벌였다.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기아산업은 원박스카 봉고를 앞세워 회생했다. 이른바 ‘봉고 신화’였다. 이후 소형차 시장에 다시 진출하면서 소형차 프라이드(1세대)를 앞세워 돌풍을 일으켰다.

◇마쓰다가 개발하고 기아산업이 만들어 포드가 판매 = 기아산업은 일찌감치 일본 마쓰다에서 소형차(브리샤)를 들여와 조립한 경험이 있었다.

1세대 프라이드 역시 마쓰다 121을 베이스로 만들었다. 이제 막 자동차 혁명이라 불리는 ‘모터리제이션’이 시작하던 무렵이었고, 소형차 프라이드는 그 신호탄이었다. 젊은이는 물론 나이 든 멋쟁이 오너가 몰아도 멋진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차였다.

당시 기아산업은 후발주자답게 현대차 그리고 대우차와 다른 길을 찾았다. 똑같은 시장에 똑같은 콘셉트를 앞세워 경쟁하기보다 그들과 다른 길을 가겠다는 의지가 뚜렷했다. 현대차가 엑셀과 프레스토, 대우차가 르망을 앞세워 1500cc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서 기아산업은 이보다 작은 1300cc급 소형차 시장을 처음 열기도 했다. 결국 선택은 맞아떨어졌고 기아산업은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가며 대우차를 추월하기도 했다. 우리 자동차 역사에서 기아산업이 마침내 존재의 당위성을 찾아가던 때였다.

그 무렵 미국 빅3 가운데 하나인 포드는 넘치는 현금성 자산을 앞세워 글로벌 M&A에 나섰다. 이들은 일본 마쓰다 지분까지 보유하며 영역을 넓혀왔다. 덩치 큰 세단만 만들었던 포드는 마쓰다 소형차를 미국으로 가져와 팔기를 원했다. 그런데 일본 공장의 인건비가 적잖게 비쌌다. 그러던 참에 마쓰다 121을 조립 생산하는 기아산업을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 조립 기술이 튼실했고 인건비 측면에서도 충분한 메리트가 있었다.

결국 미국 포드는 기아산업에 프라이드 9만 대를 주문했다. 한국에서 차를 받아와 포드 엠블럼을 달고 차 이름은 ‘페스티바’로 판매했다. 개발은 마쓰다가, 생산은 기아산업이 맡았고, 포드는 팔기만 했다. 손 안 대고 소형차 하나를 뚝딱 얻었던 포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생산공장 하나 없이 1대당 판매 마진을 부지런히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아차에 아이디어를 빼앗긴 포드가 뒤늦게 마쓰다와 공동으로 개발해 선보인 소형 SUV 이스케이프.
▲기아차에 아이디어를 빼앗긴 포드가 뒤늦게 마쓰다와 공동으로 개발해 선보인 소형 SUV 이스케이프.

◇극비리에 진행된 포드의 소형 SUV 프로젝트 = 재미를 붙인 포드는 프로젝트 2탄을 계획했다. 이번에는 프로젝트명 UW-52라는 소형 SUV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풀사이즈 SUV가 인기를 끌었다. 둔탁한 픽업 트럭을 개조해 승용차 분위기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런 SUV를 소형으로 개발할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포드는 도심에서 즐길 수 있도록, 그리고 여성 오너까지 아우를 수 있도록 둔탁하지 않고 둥글둥글한 디자인을 갖춘, 작고 앙증맞은 소형 SUV 개발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디트로이트 공장의 생산비용이 문제였다. 일본 공장의 인건비가 저렴했지만 운송비를 감안하면 남는 게 없었다. 결국 포드는 기아산업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소형 SUV 프로젝트를 내밀었고, 연간 15만 대 가운데 한국에 10만 대 주문의사를 밝혔다.

당시 기아산업의 연간 생산량은 20만 대에 채 미치지 못했다. 현재의 화성공장을 건설하기 이전이었고, 공장은 시흥군 소하리 공장(현재 광명공장)이 유일했다. 그런 마당에 포드가 소형 SUV 10만 대 주문을 내놓았으니 솔깃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최종협상에 이르러 포드는 냉철함을 드러냈다. 일본 마쓰다의 지분을 야금야금 삼키듯, 스포티지 10만 대 주문을 조건으로 기아산업 주식 50%를 요구했다.

당시 김선홍 기아산업 회장이 보기에 포드의 조건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물건을 대규모로 사 줄 테니 공장을 내놓으라는 심보였다. 앞서 일본 마쓰다 역시 위기에 몰리던 상황에서 포드의 제안을 받고 지분을 넘긴 상황이었다.

자존심이 상했던 기아산업은 냉큼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포드와의 관계를 끊어 버렸다. 한국의 작은 자동차 회사 기아산업의 초강수에 포드도 적잖게 당황했다. 그리고 곧바로 한 걸음 물러난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기아산업이 당시 계획했던 아산공장(지금의 화성공장)을 별도 법인으로 만들고 그 지분의 50%를 요구하는 수준으로 양보를 했다. 그러나 이 제안 역시 결렬됐다.

당시 기아산업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회사가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가 원박스카 ‘봉고’를 개발해 부활한 상황이었다. “두들겨 맞더라도 결코 무릎은 꿇지 않겠다”는 게 그들의 의지였다.

협상이 결렬되고 미국 포드가 되돌아가고 나서 당시 김선홍 회장은 곰곰이 생각했다. 따지고 보니 미국 포드가 제안한 소형 SUV 콘셉트는 정말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김 회장은 곧바로 상품기획팀을 소집했다. 그리고 냉큼 포드가 제안했던 소형 SUV 개발에 착수했다. 결국 1년여 만에 세상이 깜짝 놀랄 획기적인 콘셉트를 지닌 소형 SUV를 만들어냈다. 이 차가 기아산업이 최초로 선보인 1세대 스포티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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