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모든 논란의 화살은 거래소의 수장인 이사장에게 겨눠진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당사자가 대단히 잘못했다고 볼 수도 없다. 오히려 정권과 맞물린 낙하산 인사가 허용되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당사자들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지금까지 낙하산 논란을 뒤엎을 만한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거래소는 출범 이후 60여 년간 27차례 이사장을 배출한 가운데, 2005년 통합출범 이후 증권사 출신인 김봉수 전 이사장을 제외하면 모두 전직 금융관료 출신들이 이사장직을 맡았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자본 시장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재임 기간 중 성과가 기대치에 못 미쳤다는 지적을 받았다.
통합거래소 출범 후 초대 이사장으로 선임된 이영탁 전 이사장은 재임 중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도 거래소 발전을 위한 핵심 요소인 기업공개(IPO)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DJ정부 시절 재정경제부 국고국 국장을 맡았던 이정환 2대 이사장은 방만 경영, 정부의 강제적인 공공기관 지정 등에 대한 비판을 받으며 임기를 다 채우지도 못했다.
제4대 최경수 이사장 역시 대표적인 ‘친박(親朴)’ 인사로, 재임 기간 예산 삭감을 이유로 주요 사업을 중단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8월 17일 사의를 표명했던 제5대 정찬우 이사장은 과거 금융위 부위원장 재직 당시 최순실 씨 측근 이상화 전 KEB하나은행 본부장 인사에 개입한 혐의로 특별검사팀의 조사를 받았으며, 탄핵 정국이 시작되면서 중도 사임설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제6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정지원 이사장의 어깨는 상당히 무거울 것이다. 성과를 내기에 앞서, 장기간 지속된 이사장의 공백 기간을 메우기 위해 처리할 과제들이 너무 많이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코스닥 시장의 활성화를 통한 시장 균형 발전’이라는 책임을 안고 시작해야 한다. 정 이사장도 3일 취임사를 통해 가장 먼저 “코스닥 시장이 창의와 혁신이 살아 숨 쉬는 모험자본 조달의 산실로 확고히 자리 잡도록 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지 않았는가.
한동안 중단됐던 지주사 전환 작업도 관심거리다. 지난해 거래소 내부 태스크포스(TF)가 해체되는 등 현재는 전환 작업이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 이사장은 지주사 전환 작업에 대한 의지를 직접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취임식에서 “한국거래소의 경쟁력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언급한 만큼, 어느 정도는 염두에 두고는 있을 것이라 본다.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줘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감도 가져야 한다. 거래소 직원들은 △역대 최단 기간 재직 이사장 사퇴 △낙하산 인사의 연속 낙점 △내부 출신 선임 물거품 등으로 사기가 상당히 저하된 상황이다.
산더미 같은 과제를 떠안은 셈이지만, 신임 이사장은 자본 시장의 균형적인 발전과 신뢰감 회복을 위해 충분한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는 ‘관피아·낙하산 인사’라는 꼬리표를 떼어 버리고 ‘전문성으로 승부해 성과를 낸 수장’이라는 별칭을 얻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