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의 우리술 이야기] 전통 청주를 빚어보자

입력 2017-11-0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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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청주 색은 옅은 황금색으로 수확을 앞둔 요즘 농촌의 들녘과 같다. 오래된 화이트와인과 비슷한 색깔이다. 일본 사케의 투명한 색과 중국 황주의 갈색과는 다르다. 전통 청주의 맛과 향은 깊고 풍부하다. 단맛 신맛 쓴맛이 섞여 있고, 사과 복숭아 등 과일향이 있고 때로는 초콜릿 맛이 나기도 한다. 잘 빚어진 전통 청주는 좋은 와인 이상의 다양한 풍미를 즐길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청주를 즐겨 왔다. 막걸리라 불리는 탁주는 일상에서 편하게 마시는 술로, 농사일을 하면서 마시는 농주(農酒) 등으로 사용되었다. 맑은 술인 청주는 제사나 혼례 등의 관혼상제 때나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술로 많이 사용되었다. 청주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오고, 조선왕실의 행사 기록인 의궤에는 아주 많이 나온다.

이렇게 맛있고 뜻깊은 전통 청주는 집 근처 마트나 시장에서 사기 어렵다. 시중에서 청주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술은 모두 일본 사케 방식으로 만든다. 대형 전통주 업체에서 전통주 모양의 이름을 붙여 파는 술도 대부분 일본식 주조법을 쓴다는 면에서 차이가 별로 없다. 이는 일제 35년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해방 이후 주세법을 제대로 바꾸지 못한 우리 정책당국의 잘못이다. 주세법시행령에 따라 누룩을 사용해 우리 전통 술 빚기 방식으로 만든 맑은 술은 청주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 일본 방식으로 빚은 맑은 술만 청주라는 이름을 쓸 수가 있다. 전통 청주는 약주나 기타 제재주라는 이름을 써야 한다. 여러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문제를 제기했으나 지금껏 바뀌지 않고 있다. 참으로 반(反)역사적이고 반문화적인 일이다.

전통 청주를 직접 빚어 마셔 보자. 전통 청주를 빚는 것은 조금 번거롭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쌀과 누룩만 있으면 빚을 수 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김치 담그는 것보다 쉬울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시중에서 파는 막걸리를 맑게 하면 전통 청주가 된다고 생각한다. 전통 술 빚기에서 막걸리와 청주는 빚는 방식부터 다르다. 막걸리는 일반적으로 고두밥을 지어 식힌 다음 누룩과 물을 섞어 빚는다. 이는 한 번에 빚는다 하여 단양주(單釀酒)라 하며, 보통 7~10일이 지나야 술이 완성된다.

이에 비해 전통 청주는 여러 번 빚는 복양주(複釀酒)법, 즉 이양주 삼양주 오양주 등의 방식으로 만든다. 술 빚는 방식도 아주 다양하고, 1개월에서 3개월 정도 지나야 술이 완성된다. 먼저 쌀가루를 내어 죽이나 백설기 범벅 등을 만들고, 누룩과 물을 넣어 4~5일 발효시킨다. 이것을 밑술이라 하고 여기에 고두밥과 물을 넣어 본격적으로 술을 만드는 것을 덧술이라 한다. 밑술과 덧술을 몇 번 했느냐에 따라 이양주 삼양주 오양주 등이 되는 것이다.

덧술까지 완료한 술이 익으면 술독에 용수를 박아 조금씩 떠낸 것이 전통 청주이다. 청주를 떠낸 나머지를 거르면, 깊은 맛의 청주 막걸리가 된다. 전통 청주나 청주 막걸리의 알코올 도수는 16도 정도로 와인보다 조금 높다.

전통 청주는 죽이나 떡과 같은 밑술의 재료, 밑술과 덧술의 회수, 덧술에 넣은 물과 쌀, 누룩의 비율 등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다른 술이 된다. 누구든지 우리 술빚기를 배우면 자신만의 전통 청주를 빚을 수 있다. 자신만의 술을 빚어 마셔 보는 것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인생에 꼭 한번 해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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