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사람을 더 쓰면 세무조사를 면제해 준다?

입력 2017-11-2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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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제대로 거두지 않고는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 당연히 징수의 책임을 지는 국세청은 이를 제대로 거두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중 하나가 세무조사, 즉 납세의무자를 상대로 세금을 누락하지 않았는가를 정기적으로, 또 특별히 확인하는 일이다.

조사 대상자로서는 겁나는 일이다. 조사 기간의 불편이 만만치 않은 데다, 탈루가 발견되거나 드러나면 추징을 당하는 것은 물론 형사상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조사가 면제되는 성실납세자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등 그 대상이 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쓴다.

국세청 또한 마찬가지. 이를 잘 알기에 조사 대상자와 조사에 따른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성실납세자를 정해 조사를 면제해 주기도 하고, 천재지변이나 큰 사회경제적 변화로 피해를 본 경우 조사 대상에서 제외해 주기도 한다.

좋은 일이다. 또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때로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를테면 정부의 특정 정책을 장려하기 위해 이 정책에 호응하는 납세자들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해 주곤 하는데, 이런 부분에서는 수시로 ‘이게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번 달 말까지 접수하는 일자리 창출 관련 정기 세무조사 면제만 해도 그렇다. 보도에 따르면 2016 과세 연도 기준 수입금액이 300억 원 미만인 기업은 내년에 전체 직원의 2% 이상, 즉 현재 직원이 100명일 경우 2명 이상 채용하면 정기 세무조사를 면제받는다. 또 300억 원 이상 1000억 원 미만 기업은 4% 이상을 채용하면 그렇게 된다.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일자리 창출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가 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세무조사가 겁이 나서라도 고용을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일자리 문제에 긍정적인 결과가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기업으로 하여금 시장 외적인 이유로 고용하지 않아도 좋을 인력을 고용하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이게 우리 기업이나 경제와 산업에 얼마나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오히려 고용구조와 산업구조를 왜곡시킬 가능성은 없을까?

그뿐만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면제받은 기업에 정말 세금 탈루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야말로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된다. 실제로 세무조사가 겁이 날 이유가 있는 기업일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다. 세무조사를 면제해 주겠다는데 뭐든 못하겠나.

또 있다. 세무조사를 면제받기 위해 억지 고용을 했다는 이야기가 회사 안팎에 퍼질 경우 어떻게 될까? 그 기업의 신용이 온전할 수 있을까? 심지어 멀쩡한 회사가 그런 오해를 받게 되는 경우는 생기지 않을까?

고용촉진은 산업구조 조정과 신산업 발전을 촉진하는 산업정책, 인력 양성과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인적자원 정책과 과학기술 정책, 또 노동시장의 유연 안정성을 위한 노동정책 등으로 하는 것이다. 세무조사를 겁내는 기업들에 사람을 쓰면 조사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할 일이 아니다.

국세청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즉 조사를 하기로 되어 있으면 조사를 해야 한다. 천재지변 등으로 피해를 당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차라리 법령을 고쳐 전체 납세자에 대한 정기 조사의 인터벌을 늘리는 것은 좋다. 또 비용 인정에서 인건비 부분에 대한 배려를 더 해 주는 것도 좋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지금은 전제군주의 시대도 아니고, 독재와 권위주의의 시대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 행정 곳곳에 ‘시혜’, 즉 ‘은혜를 베푸는’ 관행이 남아 있다. 특히 힘이 있는 기관일수록 그렇다. 수시로 이렇게 ‘한번 봐 주는’ ‘시혜성’ 조치들을 내놓는다.

민주 행정은 ‘시혜(施惠)’를 베푸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행정기관이 원칙을 지키며 그 주어진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정부기관이기에 앞서 국민의 기관으로서 국세청 본연의 임무와 국세행정의 원칙은 무엇인가? 세금을 바르고 공정하게 징수하는 것이다. 고용을 촉진하는 일 등 정부 정책을 받쳐주는 일 이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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