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가 진보적인 정치색을 띤다는 사실은 익히 유명하다. 개별 기업이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포용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편향성은 강화되고 있다고 지난 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알파벳 등 실리콘밸리 기업은 노골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에 반감을 드러내곤 한다. 이들 기업은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이 반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연합해 항의했고, 이후 불법체류 청년의 추방을 유예하는 ‘다카(DACA)’ 프로그램을 폐기하기로 한 데 대해 집단적으로 반발했다. 실리콘밸리의 정치적 진보성은 지난 미국 대선 운동 때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미국 연방선거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5~2016년 알파벳, 페이스북, 트위터가 직원들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캠프와 트럼프 캠프에 기부한 선거 자금은 매우 대조적이었다. 알파벳에서는 힐러리 캠프에 155만 달러(약 16억8779만 원)를, 트럼프 캠프에는 25만 달러를 각각 기부했다. 페이스북 직원들은 각 캠프에 46만 달러, 4600달러를 기부해 정확히 민주당 캠프가 10배 더 모금하는 데 성공했다. 트위터 직원들은 각각의 캠프에 12만 달러, 4000달러를 후원금으로 냈다.
이러한 정치적 편향성은 IT 기업으로서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직원들의 성향이 한쪽으로 우세하면 여론을 주도하는 인터넷 공론장에 무의식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토론과 논쟁을 장려하는 기업 분위기에 걸맞게 다양한 정치 성향은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IT 기업 경영진들이 끊임없이 다양성을 중요한 가치로 강조하는 이유다. 지난 3월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연설에서 “당신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면 정치적 다양성을 포함한 모든 관념에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위터의 캔디 캐슬베리-싱글턴 다양성 부분 책임자는 지난 8월 “전 세계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는 이때 그 어느 때보다 포용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정치적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은 적지 않다. 페이스북은 지난 6월 ‘폴리틱스 런치’라는 사내 포럼을 만들었다. 45차례에 걸쳐 수 천명이 참석한 이 포럼은 점심 시간에 도시락을 함께 먹으면서 고용, 세금 문제 등 여러 정치적인 문제를 토론하는 장이었다. 포럼을 주도한 페이스북 직원 포스코 마로토는 트럼프 지지자다. 그는 “작년 대선에서 내가 트럼프를 지지했다고 밝히자 동료는 이 사실을 쉽게 믿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업 이사회를 이용해 정치적 다양성을 추구하기도 한다. 트위터와 페이스북를 포함해 여러 IT 기업들은 이사회나 정책을 만드는 위원회에 민주당과 공화당 출신 인사들을 일부러 기용한다. 특히 트위터는 보수적인 성향의 워싱턴 인사들을 핵심 전략가로 기용하곤 했다고 WSJ는 전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 근로 현장에서 보수적인 성향을 더 드러내기 어려워졌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구글에서 성차별적인 글을 올려 해고된 제임스 다모어 전 엔지니어 측 변호사 하미트 딜런은 “오래전부터 보수주의자들은 실리콘밸리에서 환영받지 못했다”며 “그런데 작년 대선 이후 진보주의자들이 다른 견해를 경멸하는 태도가 강화됐다”고 주장했다.
한 전직 구글 관계자는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는 공화당 지지자들 파티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그는 “구글에 나 말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직원이 있을 줄 몰랐다”며 “우리는 서로 놀랐다”고 회상했다. 또 “당신이 트럼프 지지자라고 밝힌다면 커리어에 도움은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지 공유 사이트 핀터레스트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참전 용사이지만 동료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참전 용사라고 하면 보수적인 정치 성향이라고 여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모든 참전 용사가 보수주의자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WSJ은 실리콘밸리 내에서 보수적인 성향도 사안에 따라 환영받을 수 있다고 결론 냈다. 예컨대 세제 개혁안이나 규제 완화 등 사안에서는 공화당과 일치하는 견해는 환영받는다. 그러나 동성 결혼, 이민 문제와 같은 사회적인 이슈를 놓고 보수적인 견해를 내놓으면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시민단체 링컨네트워크의 아론 진 회장은 “보수적인 성향의 직원은 자신의 성향이 다르다는 것은 표명하기 쉽지 않다”며 “그들의 커리어와 평판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