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추진하는 경제 정책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는 재벌 개혁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임금노동자 간의 격차 해소, 최저임금의 1만 원 인상 등의 정책 집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각각의 방향에서 진행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들은 한국 경제의 성장 과실을 독점화하면서 생긴 소득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는 조치로 귀결된다.
이 같은 불평등의 사회 구조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정부가 부추겼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6·25전쟁을 겪고 난 1953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당시 국내총생산(GDP)은 불과 13억 달러에 불과했고, 1인당 국민소득(GNI)은 76달러였다. 내년에 ‘마의 벽’으로 일컬어지던 1인당 3만 달러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하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경제 강국의 금자탑(金字塔)을 쌓아 올린 주역은 지금의 대기업이었다. 요즘엔 역설적이게도 한국 경제사에서 많은 부조리를 발생시킨 오명(汚名)을 뒤집어 쓰고 있다.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는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이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하청 구조는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우리 사회 양극화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기대했던 대기업의 낙수효과는커녕 중소기업의 고혈(膏血)을 짜내면서 사회 양극화를 부채질했다.
이명박(MB) 정부의 경우 법인세 명목세 최고세율(25%→22%)을 3%포인트(p) 낮추며 낙수효과를 기대했지만, 전혀 효과를 내지 못했다. 최근에는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로 나눈 값)이 2014년 5.41에서 지난해 5.45로 악화하는 등 소득 불평등도 심화했다.
올해 초 향년 92세로 별세한 유럽의 진보적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생전에 “부자들의 부의 증가는 부와 소득의 위계에서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고사하고 부자들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낙수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더욱이 바우만은 “그나마도 갈수록 환상이 되어가고 있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는 오늘날 점점 더 통과할 수 없는 수많은 격자(格子)와 넘을 수 없는 장벽들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속담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계층 간 단절의 심화를 의미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 같은 단단한 장벽을 깨부수기 위한 정책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적극적이고 갑작스러운 정책을 통해서 말이다.
2011년 ‘정보비대칭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은 진보적 경제학자 스티글리츠 교수는 그의 저서 ‘불평등의 대가’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시장 실패를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한발 더 나아가 세계 3대 부호에 이름을 올린 아마존의 창시자 제프 베저스는 “변화가 서서히 올 때는 기득권층이 유리하지만 갑작스럽게 올 때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유리하다”고 했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혁을 주도하고 빠르게 추진하는 배경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속도가 빠르면 부딪히는 마찰열과 저항(抵抗)도 심하게 생기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 눈치를 보던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쓴소리를 내뱉고, 기업들도 반발 움직임이 확산될 조짐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정책 방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조금은 아쉬운 대목이다. 정부의 정책 집행과 관련해서는 이해 관계자들 간 명암이 분명 존재한다. 공산국가가 아닌 이상 국민의 100% 지지를 받기 힘든 게 민주주의의 속성이다.
무조건 밀어붙이기식이 아닌,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지막까지 설득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최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의 요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이고 빠른 개혁의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한다. 다만 쉬지 않고 몰아치는 정책이 잇따르는 마찰과 저항에 부딪혀 추진력과 지속성이 약화할지 우려된다. 지금이 정책 집행의 효과를 따져보고 속도 조절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