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새 정부에 거는 기대

입력 2008-02-25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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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정체성 위기의 한 시대가 지나가고 일상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가 돌아왔다. 지난 10년 동안 시민들이 겪었던 가장 큰 위기는 다름 아닌 정체성의 위기였다. 두 좌파 정권을 거치는 동안 그들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출발점을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그들의 좌파적 사고로는 그리고 북한을 추종하는 주구(走狗)의 입장으로는 대한민국을 부정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어려웠으리라 생각된다.

우리가 새 정권에 거는 기대가 남다른 것은 바로 이 국가 정체성 위기를 새 정부가 바로 잡고 나라 기운을 새로이 일으키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어서다. 이명박 정권은 3대 정책과제로서 작은 정부, 경제 성장, 규제 완화를 추진하려 하고 있다. 이 과제들은 우리 사회의 모순과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정책의지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그 동안 우리가 겪었던 고통과 사회적 폐해를 감안한다면 국가 정체성 회복이 새 정부가 세워야할 전략적 개념의 첫 번째 정책과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새 정부의 주요 정책과제 중에는 ‘사회질서 바로잡기’가 있다. 아마도 이 사회질서 바로잡기를 포괄적 의미로 해석하면 국가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으로 판단된다.

그 명칭이 ‘사회질서 바로잡기’든 ‘정체성 회복’이든 간에 나라 정체성을 바로 잡는 건 다른 어떤 과제보다 가장 시급하고 선결해야할 사안이다. 헌법에 명시된 법과 질서를 회복하고, 그간 왜곡되고 오도되었던 사회 인식을 바로잡는 게 매우 중요하다. 정체성이 회복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사회 통합도 이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정체성 회복은 당연히 경제성장이니 작은 정부니 하는 정책들보다 앞서는 최우선 전략과제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은 아무래도 경제 문제와 관련돼 있다. 성장을 구현하기 위한 전략적 정책과제로 작은(효율적) 정부, 규제 완화 등이 제시되고 있다. 이런 과제들은 나라 경제를 증진시키고 활성화하는데 꼭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전략적 과제들을 성취시키기 위해 선행돼야할 보다 구체적인 전술적 과제들이 있다.

첫 번째 전술 과제로는 정부부문의 군살을 과감히 빼는 일이다. 새 정부가 몇 개 부서를 폐지했지만, 그 정도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부처간 기능 통폐합은 물론이고, 정부 관련 기관의 민영화가 신속히 진행돼야 한다. 새 정부 1년 동안 정부 관련 기관의 민영화 로드맵이 확정돼야 한다. 시일이 지나면 민영화가 유야무야될 개연성이 높아서다. 정부조직이라도 불필요하거나 중복업무 조직은 폐지 또는 대폭 축소돼야 한다. 이에 따른 공무원 수 감소는 오히려 정부 효율을 높여줄 것이다. 정부 조직 축소 및 폐지와 정부관련 기관의 민영화는 전술적 개념에서 정부가 추진할 첫 번째 과제다.

두 번째 전술과제는 강성노조의 불법 파업을 일소하는 일이다. 대기업 사업장에서 해마다 되풀이되는 과격노조의 불법파업은 산업활동을 적지 않게 마비시켜왔다. 그간 과격 노조의 불법파업 행태를 살펴보면 근로자의 권익을 위하기보다는 노조 조직 자체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파업하는 사례가 허다했다. 이 같은 파업행태를 근절하지 않는 한, 노조원 권익이 보장되지 않음은 물론 노사 평화도 이뤄지기 힘들다.

우리나라 전체 임금근로자수 1천4백여만명 가운데 노동조합에 가입한 근로자수는 1백55만여명으로 전체의 11% 수준이다. 즉 근로자 10명 중에 1명이 노조에 가입한 셈이다. 여기에 불법 과격 파업을 벌이는 노동자는 주로 민노총 소속의 15만명 정도다. 즉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1% 남짓한 과격 노조원이 나머지 99%의 권익을 자의적(恣意的)으로 남용하고 있다. 더구나 이 1%가 전국 산업현장을 어지럽히고 있다. 무리한 요구와 주장은 기본이다.

이 1%의 과격노조원을 진정시키지 못하면 진정한 노사 협의가 이뤄지기 힘들다. 새 정부는 이 1%를 확실하게 다뤄야 한다. 그들이 불법파업을 벌이면 법에 의해 단호하게 처벌해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그들을 법에 의해 처벌하기보다 오히려 두둔해왔다. 그래서 그들은 법을 우습게 여기고 범법 행위는 기본이고 폭력과 산업활동 교란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국민들은 그들이 불방망이 던지고 경찰과 난투극 벌이는 장면을 더 이상 보기 원치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말 같지 않은 어거지 주장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빼놓지 않는 단골 메뉴가 있다. 다름 아닌 행정규제 완화다. 이명박 정권도 규제 완화를 주요 정책과제로 내놓았다. 그런데 역대정권 중 어느 정권도 규제를 실효성 있게 완화한 정권은 없었다. 있었더라면 기업들이 여전히 인•허가 때문에 그리 애를 먹지 않았을 것이다. 새 정부가 기업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국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규제 완화를 화려한 수사(修辭)로 하지 말고 실제 조치로서 실현해내야 한다. 말로만 떠드는 것에 국민들은 그리고 기업들은 너무 지쳐있다. 실효성 있는 규제 완화는 전략적 개념이자 전술적 개념으로서의 정책과제다.

네 번째 전술과제는 대북 정책의 대폭 수정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레드 콤플렉스 때문에 북한에 굽신거려야 했다. 국민들은 우리가 북한에 ‘주고도 기를 못 펴는’ 희한한 현실을 눈뜨고 보아야 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이제는 북한을 지원해주되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조건부 지원방식으로 지원형태를 바꿔야한다. 모든 지원에 북한의 ‘상응 조치’를 요구하는 조건을 달아야 한다.

얼마 전 북한 주민에게 지원될 쌀이 북한군 부대에 보급된 것을 확인하는 증거들이 보도됐다. 어처구니없는 건 주무부처인 통일부가 그것을 알고도 입 다물고 못 본 척 했다는 사실이다. 통일부가 북한 당국의 위반사항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직무태만을 일삼으니 통일부 폐지움직임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동안의 퍼주기식 북한 지원이 오히려 북한으로 하여금 우리를 우습게 여기는 부작용을 낳게 했다. 그들은 남한을 그들의 보급기지로 여기고 있다. 이래서야 무슨 통일 논의가 진척 있으며, 진정한 남북 평화공존이 있겠는가. 우리의 지원물자가 바르게 사용되고, 우리의 지원 정책이 북한 당국에 의해 올바르게 이해될 때 남북한 관계에 진전이 있다.

새 정부는 사회 통합을 위한 국가 정체성 회복을 전략적인 최우선 정책 과제로 삼아야 한다. 작은 정부, 경제성장, 규제완화 등도 정체성 회복과 동시에 병행돼야 하는 전략적 개념이다. 그러나 정체성 회복이 더 상위개념이다. 이런 주요 정책과제들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노사 안정, 정부의 민생경제 지원 강화, 남북관계 정상화 등 전술적 개념의 하위 정책과제들이 순조롭게 해결되는 것이 긴요하다. 새 정부 첫 해인 올해 중에 과연 어떤 정책과제들이 제시되고 실현될지 주목해본다.

최재완 편집인 [choijw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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